이방호 "최병렬 자금 수첩 본 적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전 총재 간의 갈등은 '부패의 추억'을 건드리는 양상으로 1일 확대됐다.

한나라당 이방호 총장이 이 전 총재의 가장 민감한 부분인 2002년 불법 대선 자금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는 전날에도 이 전 총재와 최근 만난 서청원 전 대표, 강삼재 전 사무총장, 정인봉 전 의원을 거론하며 "(내년 총선에)한 맺힌 사람들" "(지난 대선의 패배를 초래한)역사의 죄인"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발언들은 이 전 총재의 대선 출마를 사전에 봉쇄하려는 의도를 깔고 있다고 관측된다.

◆"이회창, 차떼기 당 책임자"=이 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최돈웅 당시 재정위원장을 당 고문으로 모시려다 '차떼기 책임자'란 국민의 질타에 서둘러 사퇴시켰다"며 "당 고문도 (국민에겐) 분노가 치미는 상황인데 차떼기 정당의 책임자인 이 전 총재는 무슨 생각으로 출마 가능성의 소용돌이에 설 수 있는지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보로 나서려면 2002년 대선 자금 모금 과정과 용처를 먼저 밝혀라"라고 요구했다. 최병렬 전 대표가 올 5월 중앙SUNDAY와 인터뷰하면서 말한 이른바 '대선 자금 수첩'도 거론했다. 다음은 기자들과 일문일답 요지.

-이 전 총재가 출마할 것이라고 보나.

"한다, 안 한다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이다. 오로지 이 전 총재만 알 것이다."

-이 전 총재가 수첩 내용과 연루돼 있나.

"대선자금 잔금 처리와 관련된 여러 의혹이 자세히 적혀 있다. 최 전 대표가 '국민이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라고 한 충격적인 내용까지 있다. 나도 본 적이 있다."

-최 전 대표가 수첩 내용을 공개하나.

"최 전 대표가 하는 얘기를 전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조선이 탄생할 때 피의 학살 등 비사(秘史)를 학자가 적어 후손에 남겼다. 10여 대(代)를 내려가던 중 후손이 보고 너무 엄청나서 불살라 버린 역사가 있다. 수첩은 그와 같은 폭발력을 가진다."

-공개될 경우 한나라당이 다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설사 타격을 받더라도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 청산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명박 후보와 상의했는가.

"이 후보는 '이 전 총재가 당에 어려운 일을 하실 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일련의 상황을 보니 이 전 총재를 모셨던 사람으로 (출마)문제를 정리하는 게 국민과 당원에 대한 자세라고 여겼다."

-이 전 총재 측 이흥주 특보는 '차떼기는 한나라당 전체의 책임'이란 취지로 반박했다.

"지금 와서 혼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건 이 전 총재의 뜻이 아니겠지만 총재의 뜻이라면 염치 없는 일이다."

이 전 총재는 대선자금과 악연이 깊다. 1997년엔 그의 선거 핵심 라인이 국세청을 동원해 166억원을 모은 세풍(稅風) 사건에 연루됐다. 2002년엔 '차떼기' 같은 방법으로 823억원을 모금한 사건이 문제가 됐다. 각각의 사건과 관련해 친동생 회성씨와 최측근인 서정우 변호사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154억원 남았었다"=최병렬 전 대표는 이 총장의 발언을 듣고 처음엔 "무슨 할 얘기가 있겠는가. 할 말 없다"고 말을 아꼈다. 수첩 공개 여부를 두곤 "노 코멘트"라고 했다. 그러나 파문이 커지자 반응이 격해졌다. 이후 전화통화에선 "사무총장이 무슨…나보고 (수첩공개를) 하라 말라 얘기를 하느냐.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이 후보 측이 급하냐, 왜 야단이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5월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발언 요지.

"당에 들어온 돈 중 154억원이 남아 있었다. 근데 그 돈이 다시 이 전 총재의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에게로 나갔다. 정당에 들어온 돈은 선거가 끝났어도 정당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고정애 기자

☞◆이방호(62) 사무총장=경남 사천이 지역구인 재선 의원으로 당 선대본부장도 맡고 있다. 경선 때 '이명박 경선 캠프' 조직위원장을 지내며 이 후보의 측근으로 부상했다. 8월 이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한 뒤 곧바로 사무총장에 기용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