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돈 흐름 막을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8면

사람들이 갈수록 은행에서 멀어지고 있다. 증권사 자산관리계좌(CMA)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시중은행들의 고금리 월급통장은 당초 기대에 못 미치고 있고, 고금리 특판 정기예금도 지지부진하다.

1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의 예금 증가 속도가 갈수록 둔화하고 있다. 고객이 매달 은행에 새로 맡기는 예금 규모가 줄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행의 총수신 증가액은 8월 1조934억원에서 9월 8710억원, 10월 8157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10월 30일 현재 국민은행의 총수신 잔액은 147조 9778억원이다. 우리은행도 마찬가지다. 10월 한 달 우리은행의 예금은 1조3980억원 늘어나 9월(1조4373억원)보다 적은 돈이 들어왔다. 하나은행의 총수신 증가액 역시 9월 8801억원에서 10월엔 3630억원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당초 은행들은 CMA에 대응하는 고금리 보통예금 통장을 속속 내놓으면서 자금이탈 막기에 노력해 왔지만 이 상품들도 기대엔 못 미친다는 평가다.

우리은행은 9월 연 4%대 이자를 주는 보통예금 통장인 ‘우리AMA전자통장’을 출시해 두 달도 안 돼 5만5700여 명을 유치했다. 가입 고객은 비교적 빠르게 늘었으나 액수로는 893억원에 불과하다. 하나은행은 우리은행보다 앞서 ‘빅팟 통장’을 선보여 두 달 만에 6300억원(12만9000계좌)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 상품은 하나은행에서 빠져나가는 자금을 계열사인 하나대투증권으로 보내는 구조라 자금의 외부 이탈을 막을 뿐이지, 은행의 예금 확대에는 별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급여 이체 고객에게만 연 4.8%의 이자를 주다 보니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는 않다”며 “보통예금 이탈을 막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월급통장 평잔이 100만원 선에 불과하다”며 “은행이 고금리를 주는 최저한도를 100만원 이상으로 잡고 있기 때문에 실제 고객들은 기존 보통예금 통장과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4대 시중은행 가운데선 유일하게 신한은행만 총수신 증가액이 늘었다. 9월엔 1조2879억원이었으나 10월 2조939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다른 시중은행은 특판예금으로도 연 5% 후반 상품을 내놓은 데 그쳤지만 신한은행은 최고 연 6.1%의 금리를 주는 특판예금을 내놓아 1조2000억원가량 팔았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신규로 팔린 예금보다 기존 정기예금 가입자들을 재유치한 것”이라며 “예금자산에서 투자자산으로 옮겨가는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도 연말까지 기존 정기예금에 추가금리를 얹어주는 식으로 연 6%대 정기예금을 판매하고 있고, 은행권에선 가장 높은 연 6%대 적금까지 내놓았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