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라의Kiss A Book] 고정관념편견 벗어 버리고 ‘더 가치 있는’ 상상력 펼쳐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고정관념 깨기’를 단순히 특별한 생각해 내기로 정의한다면 그야말로 고정관념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닐까. 월터 리프먼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곳에서는 아무도 중요한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판에 박힌 생각을 깨트려야 하는 이유는 남보다 튀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하고, 더 효율적이며, 더 혁신적인 가치를 이끌어 내는 데 그 효용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승호의 『수수께끼 ㄱㄴㄷ』(비룡소)은 엄마와 아이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할 만 한 책이다. 분명 아이들에게 낱말을 가르치는 책인데, 첫 장부터 범상치 않다. 부엉이가 눈을 부릅뜨고 나뭇잎은 누가 먹느냐고 묻지를 않나, 요리사가 국자를 든 채로 히죽 웃으면서 벼락은 누가 먹느냐고 묻기도 한다. 책의 진도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하고 ‘책 수다’를 떨기에 이보다 적합한 책도 드물다.

뒷장에 버티고 있는 답안? 아예 무시한들 어떠랴. 메아리는 누구든 들을 수 있으니 정답이 따로 있을 수 없고, 버섯볶음이 되려면 버섯도 불을 먹어야 하니 꼭 마술사만 불을 먹으란 법도 없다. 강아지들도 심심하면 축구공을 물어뜯어 꿀꺽하니 청설모라고 예외란 보장이 어디 있나. 서양적이기도 하고 동양적이기도 하고, 리얼하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한 그림도 상상의 나래를 펴고 신나게 수다 떠는 데 일조를 가한다. 어느덧 아이들은 책에 등장하는 단어를 훌쩍 뛰어넘어 비약적인 어휘력의 향상을 보여 줄 것이다.

기무라 유이치의 『폭풍우 치는 밤에』(아이세움) 또한 단순히 동화의 단골 소재인 ‘천적끼리의 우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면 그야말로 고정관념의 포로가 될 뿐이다. 무시무시한 제목 같지 않게 가슴속으로 포근한 하늬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상대가 누군지 잘 알아야 진정한 관계 맺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얼룩진 정보와 관념을 통한 ‘앎’은 때로 엄청난 오해와 괴리감을 낳는다. 차라리 가부와 메이처럼 서로 누군지 모르는 순수한 백지 상태에서 시작된 관계야말로 진실에 기초한 것이리라. 깊이 들어가면 철학적인 대화가 가능한 다양한 질문을 품고 있는 사랑스러운 그림책이다.

항상 우리에게 선물을 주는 존재로만 여겨졌던 산타 이야기를 역으로 다룬 이오나 기리치-티지오티의 『산타도 선물이 필요해』(글뿌리)도 잊지 말고 챙겨 보자.

대상 연령은 벌써부터 책이란 그렇고 그런 거라고 지레 지루해하는 7세 이상의 어린이와 세월 흐르다 보니 어느 새 앞뒤가 막혀 고루하다는 소리를 듣는 엄마들.

임사라 동화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