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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國 되려면 제도 아닌 문화 바꿔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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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26면

Wissenschaftskolleg

서양에서 경제 근대화가 다른 지역보다 빨리 시작된 이유는 뭘까. 근대화가 전 세계로 확산된 뒤에도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가 갈리는 이유는 뭘까. 이는 학자ㆍ정치인ㆍ관료를 매혹시키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하는 난제 중의 난제다.

이런 물음에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합리성의 종류나 존재 여부에서 해답을 찾았다. 또 한글의 과학성에 매료돼 ‘한글예찬론자’가 되기도 한 문명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저서인 『총, 균, 쇠』에서 지리를 결정적 요인으로 꼽았다. 유럽과 북미는 동식물을 길들이기 쉬운 지역이었고, 질병의 위협이 덜했으며, 자원도 풍부했다는 것이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그레고리 클라크 UC데이비스 경제학 교수는 바로 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그는 장기적인 경제성장, 국부론(國富論), 영국경제사, 인도경제사 등을 연구하는 학자다. 클라크는 최근 자신의 저서 『자선이여 잘 있거라: 세계경제약사』에서 앞으로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분야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여러 주장을 폈다. 특히 애덤 스미스의 주류 경제학에 반기를 들었다. 애덤 스미스는 폭군의 지배는 생산의욕을 떨어뜨린다고 했다. 생산된 재화를 지배집단이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 등의 영향으로 중세 영국을 약탈ㆍ강간ㆍ무질서ㆍ폭력이 난무하는 곳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클라크는 중세 영국을 다르게 해석한다. 생산의욕을 북돋울 인센티브나 제도적 기반이 이미 구비돼 있었고, 자유시장도 있었다는 것이다. 클라크는 부자들의 긍정적인 경제문화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며 부의 팽창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편집자>

경제학의 교조(敎祖)는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1776), 즉 국부론(國富論)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1723~1790)다.

경제학자들은 “인센티브가 좋으면 결과가 좋다”는 경제학의 중심적인 교의(敎義)가 애덤 스미스의 가르침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잘못된 역사 해석의 산물이다. 아마도 스미스의 책을 잘못 읽은 결과일 것이다.

영국에서 근대적 경제성장이 시작된 것은 인센티브가 개선돼서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 문화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회가 성장하려면 우선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거나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센티브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경제학자에게 일반화된 믿음이다. 하지만 세계사 전개의 실상을 살펴보면 세 가지 측면에서 문화의 역할이 지배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과거 국민에게 완벽한 인센티브를 제공한 정부는 경제 침체를 겪었다.

■부유한 독일이나 스웨덴보다는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활동 인센티브가 더 강력하게 마련돼 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제도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영국인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중엽까지 인도 뭄바이의 면화산업은 인센티브제의 뒷받침이 있었다. 고용상의 제약이 없었고, 완벽한 자본 보호가 보장됐으며, 법 체제는 안정적이며 효율적이었다. 수입이나 수출에 대한 통제가 없었고, 전 세계 기업인이 자유롭게 입국할 수 있었다. 영국 시장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했다. 게다가 뭄바이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노동력이 있었다. 임금이 제조비의 60%나 차지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커다란 이점이었다.

그러나 섬유산업에서 인도는 영국과 경쟁할 수 없었다. 영국의 임금 수준이 인도의 다섯 배나 높았는데도 그랬다. 이는 인센티브만으로는 성장을 이룩할 수 없다는 일례다.

인도와 정반대되는 사례는 스칸디나비아다. 이 지역은 높은 세율과 정부 지출로 경제학자들에게 악명이 높다. 개인의 급여소득은 50~67%라는 ‘살인적’인 비율로 국가가 거둬간다. 경제활동은 각종 규칙·규정·제약의 구속을 받는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경제는 성공적이다. 생산성은 미국 수준으로 경제가 꾸준히 성장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세 영국에서 노동이나 자본 소득에 대한 세율은 1% 혹은 그 이하였다. 게다가 노동 및 생산 시장은 자유롭고 경쟁적이었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없었다. 산업혁명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영국 경제의 제도적 인센티브는 수백 년 동안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악화됐다. 그런데도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부와 가난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인센티브상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들이 인센티브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렸다. 성공한 경제에서는 인센티브 환경이 나빠도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혁신을 추구한다. 실패한 경제에서는 인센티브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은 덜 일하고 덜 저축하고 낡은 기술을 고집한다.

어떻게 하면 가난한 나라를 경제·문화적으로 부자 나라와 같이 변화시킬 수 있을까.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부자 나라로 이주하면 급속도로 새로운 경제적 환경과 관습에 적응한다. 20세기 초 섬유산업을 예로 보자.

미국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폴란드 출신 노동자의 생산성은 폴란드 본국 노동자의 생산성보다 네 배나 됐다. 두 나라 모두 작업에 사용하는 기계는 같았는데도 그랬다.

선진국 경제 상황에 익숙한 이민자들은 가난한 모국의 산업화의 핵심 추진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들은 보통 부자 나라에 남으려고 한다. 미국에 사는 나이지리아 출신 숙련 노동자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현지에 남는 편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이민의 흐름은 주로 가난한 나라에서 부자 나라로 향한다. 특히 기술과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자들일수록 더 그렇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회 상황에 노출된 이민자들이 가난한 모국으로 되돌아가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그 수는 충분해야 한다. 가난한 나라들을 도우려면 학생과 노동자들을 우선 많이 초청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들이 미국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경험을 얻고 다시 본국으로 되돌아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가난한 나라의 정부와 제도를 선진국과 유사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이러한 선진국 체험 프로그램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사람이 우선이다. ⓒProjectSyndicate

그레고리 클라크(미 UC데이비스대 경제학과 교수)

▶그레고리 클라크는 UC데이비스의 경제학과 학과장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하버드대에서 수학했다. 최근 저서 .자선이여 잘 있거라: 세계경제약사.의 영문 제목은 .A Farewell to Alms: A Brief Economic History of the Worl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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