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미 하원의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 결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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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중국 정부에 탈북자 강제 북송(北送)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그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탈북자들을 경제적 불법이민자로 자동 분류하지 말고, 망명을 요구할 수 있는 합당한 기회를 제공하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실이 탈북자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북송된 탈북자들은 수용소에 갇혀 모진 고문과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처형되기도 한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중국은 체포된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하고 있다. 1951년과 67년 체결된 ‘유엔 난민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 당사국으로서 명백한 의무 위반이다. 탈북자가 요청하면 UNHCR 관계자와의 면담을 주선해 주고, 탈북 동기 확인을 거쳐 망명 허용 여부를 판단토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온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중국에서 숨어 지낸 기간을 ‘지옥 같은 삶’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들의 불안한 처지와 신분을 악용해 납치와 인신매매, 노동력과 성적(性的) 착취가 횡행하고 있다. 중국 공안의 단속을 피해 밀림을 뚫고, 사막을 건너는 탈북자들도 늘고 있다. 수십만 명의 탈북자들이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 말을 실감하며 중국 대륙을 떠돌고 있다. 중국을 피난처로 알고 국경을 넘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더 큰 고통과 시련인 것이다.

중국은 탈북자 대량 유입 사태를 걱정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해 탈북자들의 곤경에 눈을 감고 있다. 중국이 ‘21세기의 대국(大國)’을 꿈꾼다면 탈북자들이 처한 인도주의적 곤경에 눈을 떠야 한다. 중국은 강제 북송의 근거가 되는 ‘북·중 국경관리의정서’부터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

마땅히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미 의회가 대신하고 있는 데 대해 한국 정부도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해 탈북자 문제에 대해 ‘조용한 외교’로 일관하고 있다. 당당하게 할 말도 못하고, 무조건 퍼주기나 하면 인도주의와 인권이 걸린 탈북자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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