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블로그] 애플데이에 생각나는 사람 김대업

중앙일보

입력

10월 24일은 ‘애플데이’다. 사과(apple)로 사과(謝過)하는 날인 애플데이는 2002년 화해의 날로 지정됐다. ‘24’라는 숫자는 둘(2)이 서로 사(4)과하라는 뜻으로 ‘나로 인해 마음 아팠을 사람’에게 그 징표로 사과를 보내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취지를 무색하게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선거 때가 되면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는 김대업(45)이다. 애플데이가 탄생한 해인 16대 대통령 선거는 김대업의 발언 하나 하나로 여론의 향배가 갈렸다. 대세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병풍(兵風) 한 방으로 보낸 장본인이다. 김대업은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인 이회창씨의 장남 정연씨가 불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폭로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김씨는 2004년 2월 대법원으로부터 무고와 명예훼손, 공무원 자격 사칭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2005년 5월 김씨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사과받기를 원하니 사과를 보낸다”며 사과상자를 전달했다. 진심이 담긴 사과가 아니라 조소와 야유의 사과다. 염창동 한나라당사 대변인실에 택배로 도착한 사과상자 윗면에는 “한나라당 의원 김문수 김무성 전여옥 박근혜”“사과상자 속에 서신 재중”“사과받기를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시니, 사과를 드리오니 사과를 받으시오. 김대업 보냄”이라고 적힌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당시 이정현 부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상자를 폐기처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대업은 한 인터넷 매체에 보낸 공개편지에서 “제가 사과 상자에 가득 돈을 넣어서 보낼 능력이 없어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며칠 전 제가 보낸 사과를 쓰레기통에 버린 것처럼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에 사과 상자 가득히 수억씩 넣어 차떼기로 보낸 불법 정치 자금을 독이든 떡으로 생각해서 쓰레기통에 보낼 용기와 양심을 가졌다면 좋았을 것입니다”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후 김대업은 ‘사건사고’ 기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올 4월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그가 2005년 2월 경기 연천군의 임야를 매매 주선하면서 박모씨에게 땅값을 부풀려 2억7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그가 주선한 땅을 문화관광지로 개발될 지역이라고 속여 3억7000만원을 받은 뒤 원래 소유주에게는 1억원만 지불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각종 의혹 사건을 제기하는 사람을 가리켜 ‘제2의 김대업’이라고 하고 이를 두고 ‘김대업식(式) 정치공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김대업스러운 인물이다’는 두고두고 해(害)가 될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곧 ‘BBK 사건’의 키를 쥔 김경준 BBK 전 대표가 귀국할 예정이다. 이는 대선판의 여야 모두에게 ‘외통수’로 작용할 것으로 어느 쪽이 됐던 상처는 가볍지 않을 듯 하다. 검찰은 'BBK 사건'의 전말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밝혀 김대업 파동과 같은 진실 왜곡과 그로 인한 역사의 파행 없이 깔끔하게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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