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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네거리’ 교통사고 고리 끊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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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2일 대구시 방촌동 주민들이 강촌육교 옆 교차로를 무단횡단하고 있다. 대구 동구청은 무단횡단을 막기 위해 내년 4월까지 육교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22일 오후 대구시 방촌동 우방 강촌마을 옆 네거리.

 어린이와 노인, 유모차를 미는 주부 등 6명이 맞은 편을 바라보고 있다. 조금 뒤 차량이 이들 앞 정지선에 멈춰서자 일제히 종종걸음을 친다. 모두 좌우를 힐끔힐끔 살피며 불안한 표정이다. 건너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강촌마을 아파트에서 나오는 차량이 직진과 좌회전을 하는 동안 정지 차량 앞을 건너는 것이다. 짧은 신호 주기에 왕복 10차로의 넓은 길을 건너려니 모두 뛰다시피 한다. 무단횡단이다. 옆에 번듯한 육교가 있지만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오르내리기가 불편한 데다 다리가 아픈 노인이나 자전거를 탄 사람은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동구청이 육교 이용률을 높일 방안을 마련했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육교 양쪽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키로 한 것이다.

 ◆“육교 엘리베이터를 타세요”=“그렇다면 얼마나 좋아요. 정말 고맙지….” 민순식(78·대구시 방촌동) 할머니는 “엘리베이터만 설치되면 걱정이 없겠다”고 말했다. 민씨는 관절염이 있어 육교는 커녕 도로를 건너는 것도 힘겹다고 한다. 횡단보도가 없다 보니 어디서 차량이 나타날지 몰라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동구청은 육교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공사를 12월 시작해 내년 5월 개통하기로 했다. 육교 양쪽에 있는 계단 두 개(두 쪽 합쳐 4개) 중 하나씩을 철거하고 기둥에 붙여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엘리베이터는 13인승으로 두 대에 4억8500만원이 든다.

 동구청은 지난 2월 대구시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건의했다. 육교 아래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주민들이 잇따라 차량에 치이는 사고가 일어나서다. 동구청과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곳에서 난 교통사고는 모두 20건. 무단횡단하던 주민 한 명이 숨지고 두 명이 중상을 입었다. 올해도 벌써 10여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잦은 것은 횡단보도가 없는 데다 이곳 도로(화랑로)가 왕복 10차로로 과속 차량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대구 도심 쪽으로 운행하는 차량이 황색 신호 때 교차로를 통과하다 사람이 나타나면 급정거하는 바람에 추돌사고도 잦다. 주민들은 “일주일에 평균 두 번가량 추돌사고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주민 이경숙(30·여)씨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 유모차를 끌고도 이용할 수 있고 힘도 덜 들어 아주 편리할 것”이라고 환영했다.

 ◆효과 논란=엘리베이터 설치에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자전거를 타거나 리어카를 끄는 사람은 이용할 수 없어 무단횡단이 여전할 것이란 주장이다. 이곳은 도심 쪽으로 600여m 지점에 지하통로가, 반대방향으로는 1㎞ 지점에 횡단보도가 있어 사실상 두 지역이 분리돼 있는 셈이다. 강촌마을 일대는 아파트 2000여 가구가, 길 건너 쪽에는 강변타운아파트 1000여 가구가 있고, 하루 평균 1만여 명이 화랑로를 건너다닌다. 하지만, 육교 이용자는 절반에 불과하다. 노인들이 무단횡단 하자 어린이들도 따라 건너는 등 육교 아래 지점이 사실상 횡단보도로 변했다.

 주민 황윤호(38)씨는 “많은 돈을 들여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보다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동구청의 정택화 교통행정 담당은 “육교가 있어 횡단보도 설치가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며 “횡단보도를 설치를 위해 경찰과 계속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강촌육교=1998년 9월 동구 방촌동 화랑로에 세워졌다. 높이 4.5m에 길이 50m며, 양쪽에 두 개씩 계단이 있다. 주변에 강촌마을 등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민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건립했으나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불편해 주민이 외면하고 있다. 동구청은 엘리베이터와 함께 횡단보도 설치를 검토하자, 경찰은 육교 200m 이내에는 횡단보도를 만들 수 없다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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