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화백 아들도 사기 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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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변찬우)는 23일 가짜 이중섭.박수근 화백 그림 28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던 한국고서연구회 고문 김용수(69)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에게는 이 화백의 위작(僞作) 5점을 9억1900만원에 판매한 혐의(사기)가 적용됐다. 사기 미수.위조사 서명 행사.무고 혐의도 포함됐다.

검찰은 김씨의 사기 행각에 이중섭 화백의 차남 이태성(58.일본 거주)씨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김씨에게서 가짜 그림을 넘겨받은 이씨는 "부친의 유작"이라며 미술품 시장에 내놓아 위작을 진품으로 둔갑시키는 '세탁' 과정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영장청구서에 따르면 2005년 2~3월 김씨는 이태성씨와 공모해 '물고기와 아이'(사진)를 비롯한 이중섭 화백 위작 5점을 S옥션에 내놓았다. 그림들은 9억1900만원에 팔렸다. 판매 대금은 이씨의 측근인 일본인이 받아갔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그림 판매 대금의 일부를 받았다는 것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김씨가 이씨에게 그림을 전달했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시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씨가 그림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는 이태성씨에 대해서는 사기 혐의로 기소중지 처분을 내릴 방침이다. 이씨는 S옥션으로부터 받은 그림 값을 아직 반환하지 않고 있다.

김씨는 2004년 SBS 방송사에 이.박 두 화백의 미발표작 전시회를 개최하자고 제의해 계약금 5억원을 받으려 한 혐의(사기미수)와 이화여대 A교수에게 500만원을 받고 가짜 이중섭 화백의 그림 두 점을 판 혐의(사기)도 받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2005년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그림을 위작으로 판정한 한국미술품감정위원회 감정위원들을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을 낸 것과 관련해서는 김씨에게 무고뿐만 아니라 사기 미수 혐의도 적용했다. 가짜 그림인 줄 알면서 소송을 통해 돈을 챙기려 했다는 것이다.

◆유통 과정 수사는 계속=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7점 외에도 김씨가 미술 시장에 유통시킨 가짜 이.박 화백 그림이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김씨가 최대 수백 점까지 가짜 그림을 팔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김씨를 상대로 이 부분을 계속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반면 그림의 제작 경위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위조 자체에 대한 공소시효는 5년인데 그림 대부분이 6~7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유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대부분 혼자서 그렸거나 이미 그려진 그림에 가짜 서명만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김씨가 아직도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제작 경위에 대한 더 이상의 조사는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은 가짜로 판명된 2800여 점의 그림은 법원에서 재판이 끝나는 대로 모두 폐기 처분할 계획이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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