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어떤 여자의 일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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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事實은 픽션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고 상상력이 뛰어난 소설가라 할지라도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기이하고 파란만장한 삶의 모습만큼 생생하게 형상화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많은 소설가들이 현실속에서 소설의 소재를 찾아 헤맨다. 특히 굴곡이 심한 여자의 삶은 소설가들에게 훌륭한 소재를 제공한다.직접.간접의 모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토머스 하디의 『테스』나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또는 너새니얼 호 손의 『朱紅글씨』같은 작품들이 세계적인 명작의 대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점에서 우연한 일만은 아니다.
그같은 소설속 여자 주인공들의 삶은 그녀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게 마련이다.
한 여자의 일생을 변모시키는 상황은 작게는 한 개인일 수도 있고 크게는 국가일 수도, 세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여자의 일생 은 운명이라는 굴레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다고 하던가.
엊그제 한국을 찾아온 北韓軍 간호장교 출신의 李福順씨는 상황이 한 여인의 삶을 어떻게 뒤바꿔 놓는가를 실감있게 보여준 전형적 예라 할만 하다.이미 출간된 『떨어진 꽃은 줍지 않는다』(全4권.中央日報社刊)의 실제 주인공인 李씨는 살 아온 60여년이 바로 우리 민족의 비극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보통여자의 평범한 삶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테스』의 테스나 『여자의 일생』의 잔,그리고 『朱紅글씨』의프린등 소설속 여자 주인공들이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 의해 파란의 운명이 지워진다면 李씨의 그같은 운명을 만들어낸 것은 민족이요,국가요,이데올로기였다는 점에서 우선 스케일 부터가 다르다.특히 그녀 자신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데올로기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어지러운 삶의 궤적들이 새삼 우리를 안쓰럽게 한다.
소설이 아님에도 소설보다 더한 감동을 주는 까닭은 전쟁의 상처가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고,그같은 비극이 결코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아직 아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韓國에 영주귀국해 末年을 편하게 보내고 싶다는 李씨의 희망이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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