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혁명시대>中.제값 다주고 물건사면 不出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요즘 아파트지역에서는 주부들이 모이면 어느 지역 어느 가게에가면 화장품을 싸게 살 수 있으니 같이 가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화장품대리점간 가격인하 경쟁이 붙어 권장소비자가격보다 50% 할인판매하는 것은 보통이고 亂賣商을 통하면 70%까지 할인된 값으로 구입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명동이나 신촌등 서울시내 중심가에 가면 태평양의 주력제품인「화이텐스」,럭키의「뜨레아」등을 권장가격보다 50%싼 1만원에 살 수 있다.또 나드리의「이노센스」트윈케익은 권장가 1만8천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8천원,권장가격이 1 만8백원인 쥬리아의「클렌징 워터」는 4천4백원이면 살 수 있다.
이 때문에 얼마전 태평양.럭키등 국내 10대 화장품메이커 관계자들이 모여「파괴된 가격질서」를 회복하자는 논의를 벌였다.그러나 과도한 할인경쟁은 자제해야 한다는 공동인식에도 불구하고 업체마다 상충된 이해관계로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 했다.
오히려 이날 모임 이후 화장품 메이커들은 종전 권장소비자가격의 55%선이던 대리점 공급가를 최고 35%선까지 낮춰주는등 할인경쟁은 더욱 불이 붙었다.
업체간의 과당경쟁및 왜곡된 가격구조에 의한「가격파괴」현상.이는 비단 화장품업계뿐 아니라 의류업계에서도 진작부터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특히 브랜드 의류의 경우 제값을 다주고 구입하는 소비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이 세일기간중 백화점을 들르거나 상설할인매장 등을 찾아간다.
예컨대 백화점 세일기간중 권장소비자價가 23만8천원인 조이너스의 투피스는 40% 할인된 14만2천8백원에 팔리고,신원 에벤에셀의 베스띠벨리는 27만5천원짜리가 30% 싼 값인 19만2천5백원에 팔린다.
백화점 세일이 끝나 상설할인매장으로 옮겨가면 조이너스의 투피스는 11만9천원에,신원의 베스띠벨리는 13만7천5백원에 각각50% 할인된 값으로 팔린다.그러니 제값 주고 구입하는 사람이많을 수가 없다.
점차 가열되고 있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출고단계에서의메이커 이윤과 유통마진을 줄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어 이러한 가격질서 왜곡현상이 심화되는 셈이다.
지난 봄 주유소의 휘발유가격 인하경쟁도 같은 맥락이다.쌍용정유가 먼저 불을 댕기자 湖油.油公등 다른 정유업체도 이에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때 상황이 워낙 심각해 주무부처인 상공자원부는 물론이고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이 동원된데다 장기화될 경우 서로가 피해자가 된다는 점에서 지금은 休戰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휘발유의 경우 특소세 등의 비중이 커 공장도가격을 인하하면 그보다 3배가 넘는 소비자가격 인하요인이 발생하는 현행從價稅的 세율구조하에서는 이같은 값내리기 경쟁이 재발할 소지가잠복해 있다』는 것이 업계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연초에는 조니워커.시바스리갈 등 외국산 위스키의 수입가격이 인하됨에 따라 OB.眞露등 국내 위스키 메이커들은 패스포드.썸싱스페셜.VIP 등 국산 위스키 가격을 내렸다.국내업계간의 경쟁도 요인이 되지만 이들 주류메이커 처럼 외국산 수입제품과 경쟁을 하기 위해 가격을 인하하지 않을 수 없는 사례도 늘어나고있다. 최근 들어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는 조짐이 있다고는하나 수출부문에서 그렇고 국내의 전반적인 소비경기는 여전히 부진한 실정이다.공장출고에서부터 최종소비자에 이르는 유통과정에서 업계간 생존을 위한 판촉경쟁이 가열되고 그에 따른 가격인하 경쟁은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徐璋洙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