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공부] 토론이 되면 논술이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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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울 중학생 토론대회가 17일 종암중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서울 전 지역에서 각 학교를 대표한 32개 팀이 참여해 치열한 ‘토론 배틀’을 벌였다. 대회에 나선 팀들이 주어진 논제에 따라 찬반 입장으로 나뉘어 토론하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초·중·고생 조기유학이 3만여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조기유학과 어학 연수비로 인한 외화 유출이 한 해 3000억원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A중학교 토론 대표팀)

 “외화유출이 아닌 해외투자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개인의 교육권 향유를 규제하기보다 해외 ‘학습 투자’를 어떻게 국내로 되돌릴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B중학교 대표팀)

 “조기유학으로 성공하는 사례도 대단히 적습니다. 홍정욱씨나 박원희양 같은 경우가 보편적인 성공담은 아닙니다.”(A중학교)

 “잠깐만요. 박원희양은 조기유학 사례가 아닙니다. 자립형사립고를 나온 순수 국내파로 하버드대에 입학하지 않았나요?” (B중학교)

 17일 서울 성북구 종암중 강당에서 열린 제1회 서울 중학생 토론대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성북교육청(교육장 김대성)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엔 지역별 예선을 거친 32개 팀이 출전했다. 3명이 한 팀을 이뤄 토너먼트 방식으로 수상자를 가렸다. 주어진 논제는 ‘중학생 아르바이트는 바람직하다’ ‘조기유학은 바람직하다’ ‘효도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필요하다’의 세 가지다.

 ◆“토론은 공부·학습에도 큰 도움”= 우승 팀은 서울 세화여중 3학년 오남경·양은영·김민주양. 6시간에 걸쳐 5번의 ‘토론 배틀’을 벌여 얻어낸 우승 트로피였다. 이들은 사전에 주어진 3개 주제당 신문 기사 스크랩만 A4용지로 30장 넘게 정리하며 책 한 권 분량의 자료집을 만들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찾아가며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우승 팀의 은영양은 “토론을 준비하면서 방대한 자료를 접하다 보니 그 속에서 큰 흐름을 볼 수 있게 돼 공부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은영양은 전문적인 지식은 책보다는 신문을 통해 정리하며, 책은 소설이나 수필류를 중심으로 문장력과 간접 지식을 늘려가는 방법이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남경양은 “하나의 사실도 찬반의 입장에서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되다 보니 받아들이는 학습량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토론은 양쪽 입장을 모두 이해해야 하니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의적 사고의 중요성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계기다. 남경양은 공부에 바빠도 1주일에 책 한 권은 읽기를 권했다.

 민주양은 “하나의 논제라도 찬반의 입장에 번갈아 서 보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고 말했다. 민주양은 무작정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보다 법조문을 뒤져 그 근거를 밝히고 법령의 한계가 있으면 해외 사례를 인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학 토론 학습은 대입 논술의 교량 역할=우승 팀을 지도한 세화여중 신유섭 교사는 “최근 들어 통합논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토론 학습이 그 해답”이라며 “하나의 논제도 찬반 입장을 정리하다 보면 기존 교과를 뛰어넘는 학습 영역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또 신 교사는 상대방 주장을 빠르게 요약 정리해 이에 대해 반박하는 훈련은 대입 논술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지문 요약 연습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 중학생 토론대회를 주관한 성북중등토론논술연구회 조상주(서울 종암중 교사) 회장은 “토론 수업은 사전 학습의 중요성을 학생 스스로 깨치게 한다”며 “방대한 자료에서 핵심적인 정보를 뽑아내고 이를 짜임새 있게 꾸며내는 능력을 기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성북교육청 안윤호 장학사는 “대학입시에서도 논술과 구술면접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초등학교 때부터의 풍부한 독서 경험, 중학교 단계에서의 토론 수업이 고교에서 논술 역량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서-토론-논술이 단계별로 연계된다는 것이다. 대입 교과 과목에 치중하게 되는 고교 이전에 토론 경험을 통해 논술 역량을 닦는 데 중학교가 최적의 시기라는 지적이다.

배노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우승자가 말하는 토론 학습

 - 남경 “말수 적은 책벌레론 안 돼요. 어떤 주제든 자기 의견을 갖고 자꾸 말하는 버릇을 들이세요. 암기로 끝나는 공부가 아닌 해석을 하고 의견을 갖는 공부를 해야 자기 것이 된답니다.”

- 은영 “다른 생각을 듣고 뻔한 생각을 공격하는 가운데 창의력이 생긴답니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근거를 갖고 독창적인 의견을 말하는 게 논술 대비에도 도움이 돼요.”

 - 민주 “엄마가 학원 다니라고 해서 따라다니는 걸로는 공부에 재미 붙이기 힘들잖아요. 내 주체적인 사고가 남들에게 받아들여질 때 공부에 대한 의욕이 생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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