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나무도 ‘노인병’ 앓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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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주변 환경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고, 아픔도 느낀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울 여의도공원 한국 전통의 숲에서 대기오염 등으로 허약해진 나무가 영양제 주사를 맞고 있다. [중앙포토]

충북 보은군 속리산에 있는 600년 된 천연기념물 103호 ‘정이품송’이 이달 말쯤 정밀 진단을 받을 예정이다. 올봄 강풍으로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는데 그곳을 통해 빗물이 스며 썩은 곳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이품송은 얼마나 아플까? 아픔을 느끼기는 하는 걸까? 건강한 나무란 어떤 나무를 말하는지, 나무의 건강은 인간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본다.

 ◆건강한 나무란=줄기, 잎의 색과 수, 윤기 등이 그 나무의 특성을 잘 유지하는 나무를 말한다. 건강하지 못한 나무는 잎의 색이나 낙엽의 양 등이 보통 나무와 다르다. 또 건강한 나무는 생리 순환이 원활하다. 뿌리는 대지에서 적당히 양분·수분을 흡수하고, 줄기는 이를 각 분위로 매끄럽게 이동시키며, 잎은 활발하게 광합성 작용을 벌여 탄수화물을 만들어 낸다.

 면역력도 건강한 나무의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생리 순환 체계가 무너져 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북대 식물의학과 차병진 교수는 “나무는 외부에서 들어온 병균에 저항하는 힘, 즉 면역력을 갖고 있다”며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병균에 대한 자기 방어력이 강해야 건강하다”고 설명했다.

 나무는 세포막만 있는 동물과 달리 세포막 옆에 단단한 세포벽이 더 있어 외부 병원균이 침입하기 어렵다. 병원체가 들어오면 ‘페놀 화합물’ 같은 항균성 물질을 분비해 병균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죽인다. 상처 부위에 보호막을 만들어 방어하기도 한다.

 요즘은 나무의 건강을 정밀기기로 측정한다. 잎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을 조사하는 ‘광합성 측정기’나 수분 이동 정도를 점검하는 ‘샤이코메타’ 등을 주로 이용한다.

 

◆나무도 아픔 느낄까=김종원 식물문화재보호연구회장은 “나무는 아픔을 전해 주는 신경계통이 없지만 호르몬이 날씨나 수분 상태 등 외부 정보를 각 기관에 알려준다”며 “나무도 환경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고, 아픔도 느낀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병원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반점과 느린 성장이 곧 “나 아파요”라고 말하는 나무의 호소라고 말한다. 나무도 감정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사람이 나무에 정성을 쏟으면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들려줄 때 스트레스를 덜 받고, 튼튼하게 성장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언제 스트레스 받나=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 성주한 박사는 “나무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 환경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햇빛의 양, 토양의 질, 병해충, 인간 행위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나무에 필요한 햇빛의 양은 나무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느티나무·은행나무는 햇빛이 많아야 잘 자라지만, 주목·회양목은 그늘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느티나무가 그늘이 많이 지는 환경에 장기간 있거나 주목에 직사광선이 계속 내리쬐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얘기다.

 토양은 나무의 건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3대 영양소인 질소·인산·칼륨이 토양에서 공급되기 때문이다. 복합비료를 뿌려 주는 것도 이런 이유다.

 사람 또는 가축이 잘 다니는 곳에 있는 나무일수록 스트레스 지수가 더 높다. 주변 흙이 다져지면서 뿌리에 필요한 물과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서다.

겨울철 도로에 쌓인 눈을 녹이기 위해 뿌리는 소금이나 염화칼슘은 가로수에 치명적이다. 염분이 뿌리나 잎에 흡수돼 나무의 생리 작용을 막기 때문이다.

 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과 김경희 연구관은 “나무의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은 병충해”라며 “특히 지구 온난화 여파로 ‘푸사리움 가지마름병’처럼 아열대 지방에서 흔히 나타나는 병충해가 곳곳에 늘어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무 치료 어떻게 하나=한국나무종합병원 문희종 기획팀장은 “병에 걸린 나무는 ‘나무 주사’를 놓아 호르몬이나 영양분을 보충한 뒤 원인 치료를 한다”며 “나무의 건강을 지키는 최선의 예방책은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무의 생리 순환 구조를 무너뜨릴 만한 원인을 찾아 없애 주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말이다.

 정이품송의 경우 문화재관리위원, 수목병리·생화학 전문가 10여 명이 잎·줄기·뿌리 등의 건강 상태뿐 아니라 병해충 유무와 주변 토양 상태를 종합적으로 살펴 치료 방안을 내놓게 된다. 문화재청은 진단비용으로 3200만원을 쓸 예정이다.

 ◆나무 건강 왜 챙겨야 할까=서울대 산림과학부 현정오 교수는 “나무는 광합성 작용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어 주기 때문에 인류에 고마운 존재”라며 “인체의 허파 같은 역할을 하는 나무의 건강은 인간의 건강한 삶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목재를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 외에도 푸근함과 안정감을 주는 정서적 요인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나무의 가치다.

장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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