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신문·방송 겸영 허용할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는 언론시장에 개입하고 규제할 권한을 갖는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도 여론다양성 보장을 위한 언론시장 규제 문제가 뜨거운 화두였다. 신문법과 방송법 등을 통해 채택된 여론다양성 보장장치로는 공영방송 제도, 대기업의 언론시장 진입 제한, 친족 간 언론사 소유제한, 신문시장의 독과점 규제, 일간신문의 복수소유 금지, 신문과 방송의 겸영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언론시장의 규제에도 부작용이 수반된다. 언론탄압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지만, 시장경쟁을 막아 산업경쟁력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언론산업은 그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시장보호 정책에 따라 독과점적 지위를 누려 왔던 지상파방송과 일간신문들은 유선방송·인터넷·무료신문 등 후발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미 일간신문에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로부터 시장보호를 받던 군사독재 시절의 제작과 경영 방식을 개선하지 않은 채 무모한 시장경쟁을 벌인 신문산업은 지난 10년 사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경쟁력을 상실한 언론사들은 당연히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 그러나 시장구조의 개선 없이 부실언론사의 퇴출만 이뤄진다면 언론산업의 독과점 구조는 더욱 심화될 뿐이다. 부실언론의 퇴출과 동시에 언론산업이 회생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여론다양성 증진 효과가 적고 언론사의 경쟁력 향상을 저해하는 비효율적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제한하는 신문법 조항이다.

 신문과 방송의 겸영제한은 두 매체 이외의 여론수렴 수단이 없고, 그래서 그 영향력이 막강하던 시절 언론사주의 전횡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여론 형성 측면에서 신문과 방송이 독점적 지위를 상실한 지 오래다. 언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도 달라졌다. 그들은 권력도 아니고 언론사주도 아니다. 현재 한국의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집단이 대기업 광고주로 바뀐 지 이미 오래다. 언론기업의 경영난이 지속되며 생긴 결과다. 언론의 산업적 침체가 심화되면 될수록 언론의 독립성은 훼손되고 여론다양성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해 12월 국회 여야 모두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신문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 안은 뉴스통신과 지상파 방송이 일간신문의 주식이나 지분을 30%까지 갖도록 허용했다. 한나라당 안은 시장점유율 20% 미만인 일간신문에 지상파 방송사업 지분을 20%까지 허용했다. 이에 대해 언론노조와 시민단체들은 여론독과점을 심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의 겸영은 언론기업의 경영효율성을 높이고 수익기반을 넓혀 언론의 독립성을 회복시키고 여론다양성을 증진시킬 수도 있다. 물론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할 경우 여론독과점이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의 경우 겸영은 허용하되 시장점유율을 제한하거나, 동일지역에서만 겸영을 불허하는 등 여론독과점 예방장치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여론다양성은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민주사회의 원칙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장하는 방법은 정치적·산업적·사회적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은 수용자에게 보다 다양한 매체선택권을 부여하고, 침체에 빠진 한국의 언론산업에는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다. 언론산업의 경쟁력을 키워 여론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새로운 정책대안을 모색할 시점이다.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신방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