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맡긴 유럽 '공짜폰' 합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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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이동통신 가입자가 단말기를 '공짜'로 받는 게 일반화돼 있다. 이동통신회사들이 의무 사용 기간을 정하고 단말기 보조금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사용 기간을 정하고 단말기 보조금을 주는 것이 금지돼 있다. 다만 가입 기간과 이용 요금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도록 돼 있지만 일부 대리점에선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도 사실상 보조금 혜택을 줘 소비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단말기 보조금 정책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보조금 정책은 2~3년 단위로 자주 바뀌어 소비자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정보통신부는 2000년 6월 이동통신 회사들의 약관에 단말기 보조금 지급 금지 조항을 넣도록 했다. 그전까지는 단말기 보조금 지급이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통사들이 보조금을 주는 대신 의무 가입 기간을 지나치게 늘리고 중도 해지하는 고객에게 위약금을 물리는 부작용이 있다는 이유로 정통부가 단말기 보조금 규제에 나선 것이다.

이후 2003년 3월엔 단말기 보조금 금지를 법제화하면서 3년 후 이 조항의 효력을 끝나도록 하는 '일몰제'를 채택했다. 막상 일몰 기한이 닥치자 정통부는 지난해 3월 일몰 기한을 다시 2년 연장했다. 대신 사용 기간이 18개월이 넘은 가입자나 3세대 서비스 가입자에 대해선 일부 보조금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일부 시민단체 사이에서도 "단말기 보조금을 계속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소비자 선택을 넓히기 위해 보조금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소비자로선 가입 후 바로 해지해도 위약금을 물지 않게 됐지만 이번엔 불법 보조금이 문제가 됐다.

한 이통사 서비스에 가입해 3년 정도 이용하면서 매월 4만~5만원의 요금을 냈다면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10만원 안팎이다. 새로 나온 최신형 단말기는 아무리 저가형이라도 30만원을 넘는다. 3년간 이통사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에게 공짜 단말기를 제공하려면 적어도 20만원의 불법 보조금을 줘야 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이통사가 신규 고객 확보를 독려하기 위해 대리점에 주는 지원금은 대부분 불법 보조금으로 쓰인다. 이 때문에 이통사들은 매년 상당한 액수의 과징금을 낸다. 내년 3월이면 현행 보조금 제도가 효력을 상실하지만 정통부는 아직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특별취재팀 = 차진용(팀장).이원호(홍콩), 이나리(일본), 김원배(영국.프랑스.독일), 장정훈(미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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