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조직선거 대비 못한 내 잘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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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지역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독주하면서 싱겁게 끝나는 듯했던 신당 경선은 9, 11일 두 차례 모바일(휴대전화) 투표에서 손학규 후보가 1위를 하면서 정.손 후보 간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다. 그러나 막상 이날 오후 6시 투표가 마감되고 전국 147개 투표소에서 개표가 진행되면서 각 후보 측의 표정은 엇갈렸다.

◆"민심+당심+폰심 모두 승리"=정 후보 측은 캠프 사무실에 상황본부를 설치하고 전국 투표소에 나가 있는 참관인들의 보고를 바탕으로 지역별 득표수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투표가 실시돼 개표 속도가 빨랐던 서울 지역 소식이 알려진 오후 6시40분쯤 정 후보 캠프에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자체 집계 결과 서울 전 지역에서 손 후보를 앞서 7000여 표를 더 얻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손 후보 측이 강세 지역으로 꼽은 경기.인천에서도 선전하자 정 후보 측은 "다른 후보 측이 집중 문제 삼은 전북을 빼고도 손 후보를 제칠 수 있다"고 흥분했다.

전북 지역에서 정 후보가 80%를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손 후보와의 표 차를 3만여 표가량 더 벌이자 캠프 관계자들은 "15일 남은 지역 투표분이 개표되고 여론조사와 3차 모바일 투표 결과가 공개되더라도 14일의 승부를 뒤집을 수 없을 것"이라며 "민심.당심.폰심에서 모두 승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후보 측은 근소한 차이지만 손 후보의 정치적 고향인 경기 광명과 이해찬 후보의 지역구인 서울 관악구에서 이겼다는 점을 중시했다. 정 후보 측은 손.이 후보에게 선대위원장직 제의를 포함한 통합선대위 구성을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당 흥행 불쏘시개 구실 했나=모바일 투표의 승기를 14일 경선에서도 이어가려던 손 후보 측은 개표 결과가 기대와 다르게 나오자 실망하는 모습이었다.

손 후보 측 관계자는 "지역 참관인들로부터 개표 결과를 보고받다가 그만뒀다"고 풀 죽은 표정을 지었다. 우상호 캠프 대변인은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말했지만, 내부적으론 패배를 인정하는 기류였다.

손 후보는 이날 밤 서대문 사무실에서 의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비정상적인 선거인단과 경선 룰 등 국민경선의 취지를 살릴 제도를 만들지 못하고 조직선거에 대비하지 못한 점은 모두 내 잘못"이라며 사실상 패배를 시인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이어 "나는 여러분과 대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이번 경선에서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을 거듭 확인한 만큼 새로운 정치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도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투표 결과에 대해 손 후보 측 일각에선 "이번 선거는 결국 정 후보 측 조직의 덫에 걸린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정치권 일각에선 손 후보가 자체 세력을 불리지 않고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인 동교동 쪽의 손짓에 고무돼 신당 경선에 서둘러 참여한 것부터 덫에 걸린 게 아니냐는 견해가 나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경선 흥행에 불쏘시개 구실만 하지 않았느냐는 얘기다.

기존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한 이해찬 후보 측은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개표 결과를 파악하는 모습이었다.

◆친노 세력 어디로 이동할까=이 후보 측 관계자는 "이 후보가 대전.충남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예상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양승조 대변인은 "투표 종료 후 이 후보에게 '투표율이 낮아 죄송하다'고 했더니 '못난 후보 때문에 그렇다'며 오히려 고생했다고 격려하더라"고 전했다. 캠프 관계자들은 승패와 관계 없이 경선을 완주하기로 한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경선 이후 상황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이 후보의 주 지지층이었던 '친노 세력'이 신당의 대선 후보를 밀 것인지, 제3의 후보로 떠오른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쪽으로 이동할 것인지를 주시하고 있다.

김성탁.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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