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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환경을살리자>31.해남 두륜산 생태조사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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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어,저기 청띠제비나비잖아.맥주 한박스 내거다.』 전남해남군두륜산에서 자연생태계 정밀조사가 시작된 지난달 13일 오전9시30분쯤 대흥사 매표소 입구에서 첫 탄성이 울렸다.곤충팀을 이끄는 李元求교수(全北大생물학과)가 제자 6명으로 구성된 곤충조사요원들에게 청띠제비나비를 발견하면 맥주 한 박스를 내고 노래방에도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한지 불과 1시간30분만이었다.
날개 가운데 청록색 띠가 선명한 청띠제비나비는 남부 섬지방의후박나무 숲이 주서식지이지만 최근 거의 발견되지 않아 환경처에서 감소추세종으로 분류,특별보호대상 곤충명단에 올라 있다.
林載原씨(全北大생물학과 석사과정)는『지난해 청띠제비나비 주서식지인 보길도에서 전북대생 2백30여명이 생태조사를 했을 때도李교수님이 같은 약속을 했으나 맥주를 차지한 사람은 없었다』고말했다.한마리뿐인 청띠제비나비를 행여 다칠세라 흰색 반투명 종이에 첩약처럼 싸서 허리춤의 채집통에 넣은 곤충팀은 5시간30분만에 대흥사→진불암→구름다리를 거쳐 다도해가 그림같이 펼쳐진두륜봉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은 정상의 白雲臺 너럭바위에 털썩 앉자마자 다시 일어나 포충망(잠자리채)을 들고 이리저리 뛰었다.곳곳에서 청띠제비나비가 목격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급한듯 이들을 불러 모은 李교수는『동일종을 두마리이상 채집하면 생태조사단이 아니라 생태파괴단』이라고 경고한 뒤『육지에서 처음으로 청띠제비나비 집단서식지 발견.한반도 기온환경이 지속적으로 변화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는 척도 가 될 것으로 보임』이라고 메모했다.
곤충팀은 이날 오후 하산길 북암 바로 아래에서 학계에 보고된적이 없는 속칭 통거미(전갈의 집게발이 흔적 기관으로 축소되고다리가 몸통의 20배 정도로 길어진데다 허리가 없어 거미보다 진드기쪽에 가깝다),넓적송장벌레(남부지방에서 최초로 발견)등 1백여종의 곤충을 채집했다.
이런 수확에도 불구하고 두륜봉~노승봉 사이 헬기장을 포함한 초원지대에서는 과거 흔히 발견되던 메뚜기류가 거의 자취를 감춘데 대해 李교수는『헬기장 건설등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서 두륜산생태계도 파괴위협을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우려 했다.
吉奉燮 圓光大교수팀을 따라 식물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살펴본결과 낙엽활엽수림대는 산 중턱까지 서어나무.졸참나무.굴참나무 群落이 뒤섞인 모습을 보이다가 표고 6백m를 넘어서면서 소사나무.신갈나무 집단으로 바뀌었다.
동백.붉가시나무등 상록활엽수 군락들은 낙엽활엽수 군락과 표고구분없이 모자이크식으로 어우러져 두륜산만의 특색을 이뤘고 소나무군락은 산 아래쪽에서 드문드문 보였다.
吉교수는『상록활엽수.낙엽활엽수.침엽수가 같은 산에 조화를 이룬 것은 빙하기의 흔적,남해 기후가 집약된 두륜산만의 특색』이라며『이런 생태계에 인위적인 파괴가 일어날 경우 후손들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인 생물다양성이 치명타를 입게 된다』고 강조했다. 희귀하고 비싸기가 인삼 버금간다는 한약재 천마,학계에 사진 보고된 적이 없는 세손이등 9종을 새로 발견한 鄭泳喆교수(順天大생물과)는 사진만 찍고 돌아서서『조사한답시고 캐버리면 전문가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꼴』이라며「두륜산 ○○지점」 이상으로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한편 조류.포유류.양서류.파충류팀(팀장 禹漢貞한국자연보전협회사무총장)은 이번 조사에서 소쩍새.팔색조등 2종의 천연기념물,희귀종 칼새를 포함한 16종의 조류가 두륜산에 서식한다는 사실을 새로 확인했다.
***살쾡이 흔적도 발견 특히 산길 도로변에 차에 치여 죽은능구렁이가 발견됐는가 하면 고라니.삵.너구리등의 흔적도 보여 야생동물의 다양성도 풍부한 곳임이 입증됐다.
또 담수어팀(팀장 田祥麟 祥明女大교수)은 낙동강.탐진강등 주서식지로 알려진 곳에서도 수년째 발견되지 않던 희귀어종 꺽저기를 두륜산 계곡 삼산천에서 발견한 것을 포함해 한반도 고유 어종인 긴몰개.각시붕어.왕종개.자가사리,두륜산 고 유의 갈겨니등14종에 이르는 담수어종을 찾아냈다.
田교수는 그러나『삼산천에서 과거 대량으로 서식하던 은어가 해남방조제 축조이후 거슬러 올라올 수가 없게 됐다』며 인간에 의한 자연생태계 파괴를 아쉬워했다.
이번 두륜산 자연생태계 정밀조사단 吉奉燮단장은『두륜산이 아직은 남부지방의 생물다양성을 대표할만한 생태자원의 寶庫로 남아있지만 도립공원 지정등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손길 앞에 이미 파괴 징후가 보인다』고 말했다.
〈李己元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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