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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야구 용어 "너 죽었어" "집으로"

중앙일보

입력

“너 죽었어(T‘es mort)” “집으로(A la maison)”

얼핏 들으면 영화 제목 같기도 하고, 아니면 영화 속 대사 정도로 들릴만한 이 말은 다름아닌 프랑스어로 된 야구 용어다. 얼마 전 한 프랑스 방송이 야구를 소개했다. 프랑스에서는 낯선 스포츠지만 프랑스 아마추어 선수가 미국 트리플에이리그에 처음 진출한 때문이다.

심판은 1루에서 타자가 아웃 되자 '아웃' 이라는 말 대신 “너 죽었어”하고 외쳤다. 홈런을 치면 “집으로”, 스트라이크는 “똑바른 공 (droit)”하는 식이었다. 언뜻 보면 우스꽝스럽지만 ‘참 프랑스답구나’싶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 축구 중계방송을 보든 똑같이 사용하는 용어 덕분에 대충은 이해가 가능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크로스’나 ‘프리킥’같은 용어는 물론 ‘골키퍼’ ‘미드필더’같은 포지션도 영어는 쓰지 않는다. 프랑스 단어를 알지 못하면 중계방송을 알아들을 재간이 없다.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어린이 영어 교육용 만화 ‘도라’가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 교재로 쓰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다. 이 만화는 주인공 도라가 영어 단어와 표현을 익히는 내용으로 미국에 사는 히스패닉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라가 프랑스어를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바뀐 것이다. 부츠를 신었다고 해서 붙여진 도라 친구 원숭이의 이름 ‘부츠’도 유독 프랑스에서만은 가죽 신발을 뜻하는 프랑스어 ‘바부슈’다.

가끔 프랑스 언론에는 ‘전국 받아쓰기왕’의 불어 공부 비법이 소개된다. 토익같은 외국어 시험에 익숙한 한국사람 눈에는 대부분 참가자가 성인인 자기 나라 말 받아쓰기대회가 열린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전국 규모 대회를 앞두고는 책방에서 예상문제집을 사서 공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프랑스에서도 최근 영어의 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런 프랑스 특유의 고집스런 노력이 있는 한 큰 걱정거리는 아닐 것이다. 국적 불명의 간판과 각종 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한글날만 되면 국어 사랑을 말한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우리말 겨루기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건 고무적이다. 그럴수록 프랑스 사람들의 자기 나라 말 지키기 고집을 한 번 쯤 새겨봤으면 싶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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