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탈북자 놓고 서로 "빈 협약 위반" 대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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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정부가 최근 발생한 탈북자 4명 연행 사건을 놓고 서로 상대방이 '빈 국제 협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정면으로 대립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 공안의 공무 집행을 한국 영사들이 방해해 '영사 관계에 관한 빈 협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주중 한국 대사관측은 "중국 공안들이 신분을 밝힌 한국 영사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해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을 위반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빈 협약'을 근거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9일 오후 탈북자 4명이 베이징(北京)의 한국인 밀집 지역에 있는 한국국제학교의 하교 시간을 틈타 기습 진입하면서 비롯했다. 이어 3명이 추가로 진입을 시도했으나 보안요원의 제지로 진입에 실패하고 달아났다. 학교측의 신고로 출동한 중국 공안은 학교 안에 숨어 있던 탈북자 4명을 연행하면서 현장에 출동안 베이징 총영사관 소속 영사 4명이 제지하자 이들의 팔을 뒤로 꺾은채 끌고 가는 등 사실상 폭력을 행사했다.

이튿날 한국 외교부는 주한 중국 대사관 관계자를 불러 이 사건에 대해 정식 항의하면서 탈북자 문제 해결을 주문해 사건은 소강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11일 중국 외교부의 류젠차오(劉建超)대변인은 정례 외신 브리핑에서 "국제학교의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출동한 중국 공안(경찰)의 정당한 법집행을 한국 영사들이 방해했다"며 "이는 영사 관계에 관한 빈 국제 협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영사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영사가 주재국의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는 부분을 근거로 댄 것이다.

이에 대해 주중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영사 4명이 현장에서 탈북자들이 한국행을 희망한 사실을 확인했는데 중국 공안들이 신분증 까지 제시한 한국 영사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다"며 "외교관에게 폭력을 행사한 중국측이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을 위반했다"고 반박했다.'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은 외교공관뿐 아니라 외교관 신체의 불가침 권한까지 규정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 당국은 탈북자들의 자유 의사를 존중하고 국제법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빈 협약=외교관계·영사관계·조약법에 관한 3가지 빈 협약을 통칭한다. 1961년에 채택된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은 외교관계가 수립된 국가간의 외교 사절에 대한 직무 ·특권 등을 규정했다.영사의 임무와 특권 등을 규정한 협약으로 63년 체결됐다.1969년에 체결된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은 국제 관행으로 맺어진 조약에 적용되는 협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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