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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김일성사망이 준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벌써 몇주일째 계속되는 가뭄과 기상관측사상 기록을 경신하는 무더위에 지쳐 우리의 心身은 고달프기만 하다.
그러나 몇차례 시원한 소나기라도 내리고 나면 아마도 지겨운 더위의 기억은 점차 우리 뇌리에서 멀리 사라질 것이다.언제나 인간은 크고 작은 자연의 재앙 앞에서 호들갑을 떨지만 곧 망각속에 묻어버리곤 한다.요즘같은 비상시에는 電力예 비율 몇%를 따지는 사회 공익적 관심이 높지만 危機국면을 벗어나면 내 마을에만은 발전소 건설이 不可하다는 이기심의 발동을 다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올 7월의 사건중 길이 기억에 남겨야 할 일은 자연이 아닌 인간의 일이다.대다수 국민들이 고대하던 金日成의 죽음이 현실로 나타났으나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은 한 목소리가 아니었다.金의 사망 보도에 안도와 변화 기대의 물결속에애도.조문의 의사 표현도 나타났다.
해방 이후 긴 세월을 지나며 대다수 국민은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등 각 분야의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難局타개의 극적 탈출구를 통일에서 찾고,이를 곧 金의 죽음과 연결해 생각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왔다.이는 마치 험준한 등산길에서 산마루 하나만 넘으면 앞길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와 같았다.
경험많은 등산객은 산마루에 올라도 숨돌림도 잠시 뿐 곧 또다른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함을 미리 알고 발길을 조정한다.그러나 우리는 위 아래 구별없이 金의 사망 이후 또다른 적수들이 나타나 만만치 않은 어려운 국면을 조성할 것을 미리 내다보는 대비에 소홀했다.
근래 主思派등 과격학생들이 독점해온 우리 대학가 게시판을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金의 죽음을 애도해 조문길에 나서겠다는 이들의 움직임이 예상됐던 일이다.좌경세력들은 학생운동권을 장악함으로써 대학가를 휴전선에 버금가는 接敵지역으로 조성 했다.운동권은 각종 동아리.MT등 세뇌교육기회를 통해 신입생을 동조세력으로 키워왔다.강의시간 여하를 가림없이 학원을 진동하는 풍악놀이패의 소음은 이들의 위세를 과시하는 선동대였다.
이들의 선전기구인 대자보의 주요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군사.
문민 차별없이 南韓정부는 모두 타도의 대상이다.
반면 北韓정권은 정통성 있는 정부며,人權문제도 북쪽에는 존재하지 아니한다.비교우위에 입각한 국제分業 이론은 선진국 이익을옹호하는 사기며,농업은 결사 보호해야 한다.勞使분규의 책임은 전적으로 기업경영자측에 있으며 노조측 주장은 항상 타당하다.
駐韓美軍은 조국통일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며,군사무기 도입은 반대해야 한다.반면 북한의 核무기 개발은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힘이 된다.운동권의 활동을 규제하려는 발상은 매카시즘이며,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公安政局 조성이다.
이러한 左傾학생들의 동향을 다소나마 주의깊게 보아왔다면 분향소 설치,조문참여 시도등은 거의 예상할 수 있었다.
이런 혼돈 속에 큰 파문을 일으키는 발언이 있었다.대다수 국민은 그간 말못하고 속에 담았던 말을 대신 발설해준 시원함을 느꼈다.반면 학생운동권과 배후 또는 주변세력들은 당혹과 분개를느끼고 과격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지난날 군사권위주의 정권은 그렇다치더라도文民정부는 출범부터 우방보다 민족 우선론을 주장하고 감상적 통일론에 도취하는 모습을 보였던것이 사실이다.일반 국민에게 主席칭호를 膾炙시켜 對北 자세의 흐트러짐을 조장한 것이 다름아닌 정부였다.민주화 이후 守勢에 몰린 公安기구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은 것도 정부였다.최근에야정부는 무게중심을 바로잡는 듯 하다.민간업계에서는 對北경제협력에 따른 단기이익에 이끌려 궁극적 으로 우리의 목을 조를 밧줄을 제공하는 형태의 對北經協 구상도 없지 않았나 반성해야 한다. ***시급한 국가질서 확립 일부 운동권과 북한정권의 연결고리는 朴弘총장의 「콜럼버스 발견」 없이도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국가사회의 질서 확립 없이는 경제.사회.문화 모든 활동이 위축되고 만다.이것이 1994년7월의 교훈이다.
◇筆者약력▲55세▲서울大경제학과졸▲美프린스턴大 경제학박사▲西江大경상대교수.경제정책대학원장(現)▲금통위원▲KDI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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