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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장 순례]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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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코벤트가든’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이 오페라 극장이 자리잡은 시장의 이름이다. 1632년 이니고 존스가 설계한 이탈리아 양식의 piazza에는 옷가게, 레스토랑, 술집, 카페, 꽃가게가 즐비하다. 광장에는 거리의 악사와 마임 아티스트들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극장은 일찍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터에서 발달했다. 런던 뮤지컬의 메카인 웨스트엔드는 코벤트가든과 연결돼 있다. 이곳 레스토랑에는 오페라나 뮤지컬 관람객을 위한 저녁 메뉴가 따로 준비돼 있을 정도다. 1960년대 재개발로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주변 지구를 문화재로 지정해 오늘날까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코벤트가든에 처음 극장이 들어선 것은 1732년 12월 7일. 1728년 배우 겸 매니저인 존 리치(John Rich)가 작곡가 존 게이(John Gay)에게 ‘거지 오페라’를 위촉해 무대에 올렸고 그 공연 수익금으로 극장을 지은 것이다. 에드워드 셰퍼드가 설계한 Theatre Royal Covent Garden이다. 1735년부터 1759년 사이에 헨델의 오페라가 상연됐던 곳이다. 1743년 ‘메시아’의 런던 초연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이 극장은 1808년 화재로 소실됐다. 1809년 9월 18일 로버트 스머크가 설계한 두번째 극장도 불에 타고 말았다. 개관 당시 갤러리석에서 발생한 소동 때문에 ‘맥베스’의 대사가 한 마디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Old Prices”를 외치면서 벌인 소동은 무려 61일간 소동이 계속되었다. ‘Old Price Riots’이다. 건축비 18만 파운드 충당하기 위해 갤러리석 티켓 값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결국 청중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무대 뒤에는 헨델이 연주했던 오르간이 있었다.

에드워드 배리가 지은 현재의 극장은 1858년 5월 15일 마이어베어의 ‘위그노 교도’로 개막했다. 에드워드 배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영국 국회의사당을 지은 찰스 배리의 아들이다. 처음엔 로비에서 객석까지 찾아 들어가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관 당시 이름은 ‘Royal Italian Opera House’였다. 이름에서 보듯 처음부터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이탈리아 작품은 물론이고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원작과는 상관 없이 모든 작품은 이탈리아어로 번역돼 불려졌다. 이같은 관습은 1888년 말러 지휘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전곡이 독일어로 상연된 다음 1892년 ‘이탈리안’이라는 제목이 뿌진 후부터 없어졌다. 그때부터 'Royal Opera House'로 불리면서 원어로 오페라를 상연하고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제1차 세계대전 때 가구 창고로 사용됐다. 1919년 다시 문을 열었지만 오페라, 발레뿐만 아니라 캬바레 공연과 영화 상영을 위해 사용됐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장교들을 위한 ‘메카 댄스홀’로 바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음악 출판사 부지 앤 혹스의 노력으로 음악인들이 극장 운영권을 되찾았다. 새들러스 웰스 발레단이 상주단체로 들어왔고 코벤트가든 오페라단은 1946년에 창단되었다. 1968년 영국 왕실의 배려로 ‘로열 오페라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라파엘레 몬티가 맡았다. 크림색, 금색, 빨강색이 주조를 이룬다. 돔 천장의 색깔은 스카이 블루. 변변한 극장이 없던 시절 하늘을 지붕 삼아 공연하던 야외 극장 시절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무대 전면에는 라파엘 몬티의 부조 ‘음악과 시’와 빅토리아 여왕의 왕실 문양이 새겨져 있다.

1950년대부터 오페라 티켓을 구입하기 위한 관객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각 시즌의 8주간 간격으로 오전 8시까지 줄을 선 사람에 한해 오전 10시부터 티켓을 발매했다. 그러다보니 전날 밤부터 대기하는 관객도 많았다.

1996년 여름부터 2억 1400만 파운드의 예산을 들여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에 돌입했다. 이 공사로 객석은 입석 65석을 포함해 2166석에서 2257석으로 늘어났고 TV 생중계 시설도 갖췄다. 에어컨 시설을 처음으로 갖췄고 잔향시간도 약간 늘렸다. 무대기계나 전기, 무대 장치에서 나오는 소음도 줄였다. 높이 38m짜리 무대 타워도 새로 설치했다. 재개관과 함께 입장료도 대폭 낮췄다. 하루 종일 공연장을 실험과 교육의 장으로 개방해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 30개의 무대 세트를 동시에 보관할 수 있는 백스테이지 설비 덕분에 마티니(낮공연)도 가능하게 됐다. 420석짜리 스튜디오 극장에서는 점심 시간을 이용한 무료 공연이 열린다. 발레 연습실을 겸한 200석짜리 스튜디오에서도 실내악, 독창회 등 소규모 음악회와 워크숍이 열린다.

ROH의 메인 로비는 ‘플로랄 홀’이다. 이 역시 에드워드 배리가 설계했다. 빅토리아 왕조 풍의 반원형의 유리와 철제 빔으로 된 건물인데 1859년 문을 열었다. 밤에는 댄스홀, 낮에는 꽃시장으로 쓰였던 런던의 명소였다. 댄스홀로 쓰기엔 음향이 부적합해 결국 과일과 채소 창고로 사용돼왔다. 1956년 화재로 방치된 후 ROH의 무대 세트 창고로 써왔다. Gollins, Melvin, Ward의 설계로 로비로 개조했다. 샴페인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대형 바가 들어섰고 아래 층에는 매표소, 커피숍, 물품 보관소가 자리잡았다.

◆공식 명칭: Royal Opera House (별칭은 '코벤트 가든' '더 가든')

◆개관: 1858년(재개관 1999년 12월 6일)

◆개막 공연: 마이어베어 ‘위그노 교도’ (재개관: 베르디‘팔슈타프’)

◆객석수: 2268석(입석 105석 포함), 린버리 스튜디오 시어터 420석, 발레 스튜디오 200석 입석 65석을 포함해, 2천1백66석에서 2천2백57석으로

◆건축가: 1858년 E M Barry (개보수 1999년 제레미 딕슨)

◆상주단체: 로열 오페라단, 로열 발레단,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로열 오페라 합창단

◆홈페이지:www.royaloperahouse.org

◆초연: 헨델‘알치나’(1735년)‘알렉산더의 향연’(1736년)‘마카베우스의 유다’(1747년), 베르디‘떼도적’(1847년), 홀스트‘완벽한 바보’(1923년), 브리튼‘빌리 버드’(1951년)‘글로리아나’(1953년), 본 윌리엄스‘천로역정’(1951년), 마이클 티펫‘한여름의 결혼’(1955년)

◆매표소: 오전 10시∼오후 8시. 일요일 쉼.

◆지하철: 코벤트가든 역

◆입장권 £6∼£150(약 1만원∼25만원)

◆영화 로케: ‘제5 원소’‘매치 포인트’

◆역대 주요 음악감독: 라파엘 쿠벨릭, 게오르그 솔티, 콜린 데이비스, 버나드 하이팅크, 안토니오 파파노

◆소재: Bow Street, Covent Garden, London, UK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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