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슈트키드의낮과밤>28.유학정책을 세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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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 12일오후 서울 서초동 K유학원을 찾은 金仁童군(20.
재수생)은 격앙된 목소리로 정부의 무성의를 성토했다.
전날 「고졸자 해외유학 자율화 확정」이란 신문보도를 보고 수소문 끝에 전화를 건 곳이 담당부처인 교육부의 재외동포교육과.
그러나 1분여 통화에서 그가 얻은 것이라곤「사립대는 엉터리가많고 비싸다」는 것과 「분명한 목표를 갖고 수학능력에 맞는 곳을 골라 유학을 가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말 뿐이었다. 『구체적인 것은 국제교육진흥원의 유학상담실이나 미국문화원에 가면 알 수 있다』는 안내와 함께.
그러나 다시 전화를 건 국제교육진흥원 유학상담실도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책을 찾아보겠다며 한참 기다리게 하곤 역시 답답한 소리만 늘어놓더니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미국대사관에 문의해 전화해주겠다」고 해요.』 결국 사설유학원을 직접 찾아나서게 됐지만 아무런 준비태세도,기본적인 정보도 없이 국제화를 외치며 유학 자율화를 추진하겠다는 정부당국이 『도무지 한심스러울 뿐』이라는 얘기였다. 金군의 개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이들 주무부서의 실상을 캐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일관성 없이 개방과 규제를 반복해온 유학정책,웬만한 사설유학원의 발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빈약한 정보….
유학 희망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국가.학교별 구체적 정보는 제쳐두고라도 도대체 몇명이나 나가 있는지,무엇들을 전공하고 있는지,학위 취득률이나 전공별 취득자수는 어떤지 등의 기본자료조차없는 그야말로 백지상태다.
유학생수는 외무부가 2년에 한번씩 집계하는「해외동포현황」에서파악된 숫자(8만5천명)와 해외주재 교육관.교육원장들이 추산하는 숫자가 늘 판이하게 다르다.전공별로 학위 취득 현황이 파악되지않아 특정 인기분야의 학위는 인플레를,어떤 분야는 불모지를만드는 학위 편중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져 국가 차원의 인력 수급에 크나큰 차질과 낭비를 부추긴다.
교육부 산하단체인 학술진흥재단이 학위 취득 신고를 받고는 있으나 『대부분 신고하지 않는데다 세부 전공별로는 파악하지 않기때문』이란게 관계자의 설명.
체계있는 유학정책을 세운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셈이다.교육부 재외동포교육과 관계자는 지난달 뒤늦게 해외파견 교육관등에게▲대상국가의 문화.사회 분위기▲학교 현황▲학비및 생활비등기본자료를 수집해 수시로 보고토록 했으나 이를 위해선 지금보다훨씬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는『정부 차원의 유일한 기구인 국제교육진흥원 유학상담실이 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고 책임을 미룬다.
그러나 정작 상담실은 이름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있으나마나한 곳. 당초 학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다 92년 폐지돼 1년여동안 아예 사라졌다가 지난 3월 국제교육진흥원에 개설된 6평 남짓한사무실에는 책상 2개,정보에 아무런 도움이 안될 성싶은 3백권정도의 케케묵은 책들이 꽂힌 책장,소파 한 세트가 썰렁하게 놓여졌고 60대 복직 공무원 한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더 늦기전에 국가자원과 재능의 낭비.사장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이 세워져야 할 때다.
〈金錫顯기자〉[끝] ①프롤로그-환상이 깨진뒤 ②어느 女高生의하루 ③자유.풍요,그리고 ④脫線의 끝은 어디에 ⑤가디안은 해결사?(上)(下) ⑥문화갈등과 혼란 ⑦영어라도 배운다 ⑧무슨 학교라구? ⑨사이비유학원의 횡포 ⑩미국에 부는 과열교육바람 ⑪조기유학 이산가족(上)(下) ⑫매.기합유학생 사이에도 ⑬골프.예능 유학 ⑭모일 곳과 쉴 곳 ⑮성실과 젊음이 재산 ○16유학의왕도가 있다면 ○17주경야독의 허상 ○18어느 구멍가게 주인 ○1934세 여교수 ○20코알라와 키위(호주.뉴질랜드) ○21유학 신개지(캐나다) ○22말많은 필리핀 유학 ○23「중국을 알자」붐비는 北京 ○24러시아의 한인 유학생 ○25다양한 경험(유럽) ○26물가高를 헤쳐가라(일본) ○27학벌보다 국제화 ○28유학정책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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