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사이드 스토리] ‘사모님 차’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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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수입차 판매직원들은 매장 방문객 중에서 차를 살 것 같은 고객을 금세 알아볼 수 있답니다. 관상과 같은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것이 아니더군요. ‘부부가 함께 온 고객’이 정답이었습니다. 특히 주중에 중년 남성이 자동차 전시장에 들러 차를 돌아본 뒤 주말에 부인과 함께 오면 차를 살 확률은 확 올라갑니다. 이때 자동차를 최종 선택하는 것은 부인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마음에 드는 차를 아내에게 보여준 뒤 ‘승인’을 얻는 것이지요. 만일 아내가 ‘노’라고 하면 대부분의 남편은 차 사기를 포기한다는군요. 마음에 꼭 들어서 보고 또 보고 했던 차라도 말입니다. 대신 아내가 고른 차로 주저없이 바꿔타기를 한답니다. 한 수입차 업체 인사는 이를 두고 “남자들이 차를 사는 이유 중엔 여자들한테 잘보이려는 심리도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어쨌든 ‘남자들의 장난감’이라는 자동차의 선택도 이젠 여성에게 많이 좌우되는 모양입니다. 자동차 시장의 여성 파워는 실제로 막강해졌습니다. 최근 수입차 시장에는 일명 ‘강남 사모님 차(혹은 사모님 차) 신드롬’이란 게 번지고 있답니다. ‘사모님 차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면 대박’이라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사모님 차로 렉서스 ES350, 아우디 A6 2.4가 꼽힙니다. 최근엔 가격을 2000만원 가까이 내린 BMW 528i가 합류했습니다. 이 차들은 모두 국내 수입차 판매 순위 ‘베스트 10’ 안에 드는 모델입니다. ES350이나 A6 등은 해당 브랜드 판매량의 40~50%를 차지하는 효자 모델이죠.

사모님 차는 통계적 근거보다 수입차 판매직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경험적 근거에서 나온 말입니다. 전시장에 들른 부인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다거나 서울 강남 거리에서 여성들이 운전하는 수입차로 가장 많이 눈에 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모님’들은 왜 이런 수입차를 좋아할까요. 업계에선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고급스럽고 디자인이 튀지 않으면서도 개성이 있어 중년 여성들의 취향에 딱 맞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가격대도 6000만원대로 비슷하고요. 또 현대 그랜저급을 타던 구매력 있는 중년 여성들이 차를 바꿀 때 갈아탈 만한 국산차가 마땅찮기 때문이라는 것도 큰 이유로 꼽힙니다. 가령 윗 모델인 현대 에쿠스나 쌍용 체어맨 등은 디자인이 크고 ‘사장님 차’의 느낌이 나 여성들이 선뜻 선택하지 않는 것이지요. 기능과 디자인은 프리미엄급이고 크기는 중형인 차는 국산차 중에서 찾기 힘들다는 겁니다.

 고급으로 갈수록 커지고 남성적이 돼 가는 한국차의 관행, 비싼 것은 커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들이 ‘사모님’들의 눈길을 수입차로 돌리도록 한 것은 아닐까요. 국산차 업계도 이젠 다양해진 소비자층의 감성을 제대로 읽어내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사모님’들에게 국산차와 수입차를 놓고 저울질하는 ‘고민거리’를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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