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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엔 트렌드와 빈티지가 함께 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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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파리에만 낭만이 있고 뉴욕만 시크한 게 아니다. 보수적 껍데기를 한 꺼풀 벗기면 파리보다 자유롭고 뉴욕보다 생기 넘치며 어느 곳보다 트렌디한 런던의 속살이 드러난다. 고풍스러운 건물 안에 가장 ‘핫’한 패션을 보여주는 쇼윈도가 자리 잡고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모든 것이 역사고 예술이며 스타일인 곳. 바로 런던이다.

1. 고풍스러운 건물과 가로등이 잘 어울리는 런던 시내 전경


템스 강·타워브리지·대영박물관·버킹엄 궁전…. 여행 안내서가 찍어주는 관광지만으로도 시간에 쫓기는 곳이 런던이다. 하지만 최고의 패션 아이콘인 케이트 모스가 살고 비비언 웨스트우드, 폴 스미스, 최근의 마르탱 마르지엘라까지 위트 넘치는 디자이너를 탄생시킨 이곳에서 엽서 사진만 찍는 건 아깝지 않은가. 박물관·갤러리·궁전만 점 찍는 여행이라면 런던이 아니라 유럽 어느 도시여도 비슷할 터다. 런던이기 때문에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꼽았다.
 
벼룩시장에 ‘리얼 런던’이 있다
뻔한 로맨틱 코미디일 수도 있었던 영화 ‘노팅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건 배경이 된 사랑스러운 장소, ‘포토벨로 마켓’ 때문이다. 런던의 시장은 런더너(런던 사람)의 일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인 만큼 진정한 필수 코스다. 런던의 간판 시장 포토벨로 마켓은 관광객이 절반 이상. 사람에 떠밀려 다닐 지경이라 영화의 분위기를 느끼겠다는 기대는 접는 게 좋다.

오히려 앤티크 시장 끝에 나타나는 야채 과일 노점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캠든 패시지 마켓은 시간이 멈춘 듯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은 앤티크 시장이다. 짧고 좁은 골목 안에 빼곡하게 들어찬 앤티크와 빈티지 제품에서 보물을 찾아낼 것만 같다. 뜨고 있는 이스트엔드 쪽의 브릭레인 마켓은 젊고 쿨하다. ‘요즘 빈티지’가 거리마다 깔려 있는 이곳은 런더너의 패션을 엿보기 가장 좋은 곳이다. 천재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장을 보던 버러 마켓은 먹거리 천국이다. 히피족과 펑크족의 아지트인 캠든 마켓도 런던의 대표 시장 중 하나. 단, 대부분의 마켓은 주말에만 문을 연다. 주말을 낀 여행이라면 모든 일정 제쳐두고 무조건 시장을 가야 한다.
 
공원에서 런더너처럼 여유를 즐겨라
약 900만 인구가 사는 런던은 일인당 녹지 면적이 세계 제일이란다. 지도를 펼치니 녹색의 거대한 공원 표시가 많기도 하다. 잠시라도 시간을 내서 샌드위치 사들고 공원에 가자. 책 한 권 들고 가도 좋고, 하늘 보며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런더너가 된 기분이다. 노부부는 두 손을 맞잡고 산책하고, 젊은 커플은 진한 애정표현에 여념이 없다. 도시락 싸든 피크닉족 천국이다. 런던에서 가장 넓은 리전트 파크는 관광객이 절반인 하이드 파크보다 호젓하다.

특히 공원 북쪽의 ‘프림로즈 힐(primrose hill)’은 야트막한 동네 뒷동산 같은 곳이지만 런던 정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동글동글 돌아가는 ‘런던 아이’는 물론 템스 강 동쪽에 자리한 런던 금융의 중심지 ‘카나리 워프’의 고층빌딩까지 들어온다. 시내에서 좀 떨어졌지만 햄스테드 히스는 다녀온 사람 모두가 ‘강추’하는 곳이다. 우거진 숲 안에 너른 잔디밭과 오리가 떠다니는 호수까지 있어 “대도시에 이런 장소라니!”라는 진부한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다.
 
단 하나를 고르라면 ‘빌리 엘리엇’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런던의 웨스트엔드. 둘 다 뮤지컬의 본고장이라고 손꼽히지만 ‘맘마미아’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등 고전은 모두 런던에서 초연됐다. 바로 그곳에서 짧은 여행, 단 한 편의 공연을 선택한다면 ‘빌리 엘리엇’이다. 오직 런던에서만 볼 수 있는, 지금 가장 뜨거운 공연이다.

아역 배우의 놀라운 춤과 연기, 엘튼 존의 음악 속에 영화의 플롯이 그대로 살아 있다. 피카딜리 서커스 거리마다 티켓 할인 부스가 널렸지만 ‘빌리 엘리엇’만은 값싸게 구하기 쉽지 않으므로 제값을 주고 예약하는 편이 낫다. 미리 같은 제목의 영화를 봐 둬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극장의 좌석은 ‘스톨(stall.1층)’ ‘드레스 서클(dress circle.2층)’ ‘그랜드 서클(grand circle.2층 뒤쪽이나 3층)’로 구분되는데 스톨의 앞 열이나 그랜드 서클이 공연을 즐기기에 가장 좋다.
 

2. 런던은 도심 가까이에서도 쉽게 공원을 찾을 수 있다. 3. 노팅힐 게이트 튜브역. 벼룩시장 ‘포토벨로 마켓’에 가려면 이곳에서 내린다. 4. ‘포토벨로 마켓’에서 눈에 띈 빈티지 목각인형. 사진 홍난희, 하나투어 제공

‘피시앤드칩스’만 있는 게 아니다
비싸기만 하고 먹을 거 없는 곳이 런던이라지만 고든 램지나 제이미 올리버 같은 스타 셰프의 주무대가 아닌가. 게다가 인구의 30% 이상이 이민자인 만큼 세계 각국의 퀴진을 맛볼 수 있다.

뚝딱뚝딱 쉽게도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내던 제이미 올리버의 레스토랑 ‘피프틴(Fifteen)’. 반드시 예약해야 하는 인기 레스토랑답지 않게 골목 안 허름한 건물에 자리 잡았다. 메뉴판을 펼치니 각종 파스타를 비롯한 이탈리아 요리로 채워져 있다. 점심은 애피타이저가 10파운드(약 2만원) 안팎, 메인이 15~18파운드(약 3만~3만6000원) 수준. 방송에서 본 요리처럼 신선한 재료의 맛과 색깔을 잘 살린 요리가 맛깔 난다.

‘와가마마(wagamama)’는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는 일본식 누들 전문식당이다. 카페테리아처럼 캐주얼한 분위기와 깔끔한 인테리어에 눈이 갔다. 젊은 런더너 사이에 인기라는데 (아무래도 런더너보다는) 일본 라멘에 익숙한 한국인 입맛에 만족스럽지 않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밍밍한 국물 요리는 계산서 받고 돈만 아까울 테니 볶음 요리를 주문하는 편이 낫다.

‘카넬라(Canela)’는 독특하게도 브라질과 포르투갈 출신의 주인장이 유기농 남미 요리를 낸다. 높은 천장 아래 나무 테이블이 대여섯 개뿐인 아담한 공간이다. 쇼케이스 안의 샐러드와 키쉬 등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간편한 요리가 먹음직스럽다. 적당한 가격까지 도무지 흠잡을 데 없다고 런더너 사이에 정평이 난 레스토랑이다.

런던의 스타일을 쇼핑하라
영국에서 태어난 버버리나 폴 스미스 매장이 필수 코스가 됐지만 얘들이야 서울에도 다 있다. 쇼핑을 하려면 런던에서만 가능한 개성 있는 브랜드를 찾아보자.

영국의 톱숍(TOPSHOP)은 한 번쯤 들러줘야 할 곳이지만 옷 자체에 대해서는 취향 따라 극과 극의 반응이다. 오히려 품질 좋은 원단으로 심플한 디자인을 뽑는 직소(Jigsaw)가 웨어러블하다. 프라이마크(PRIMARK)에서 티셔츠는 5파운드(약 1만원), 코트는 40파운드(약 8만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 낮은 품질로 엄청난 양의 옷을 만든다. 대신 발 빠르게 유행을 따른 디자인으로 인기가 많다. 거리에 프라이마크 쇼핑백을 들지 않은 사람이 없어 궁금해진다. 옥스퍼드 스트리트 매장은 4월 재개장 당시 아수라장이 돼 BBC 저녁뉴스에도 등장했다.

해비탯(Habitat)은 실용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종합 인테리어숍. 스웨덴의 이케아나 일본의 무인양품보다는 가격대가 높지만 디자인이나 재질이 훨씬 고급스럽다. 영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은 티(tea)다. 품질 좋기로 유명한 해러즈(Harrods)의 티도 선물용으로 좋지만 하비니콜스(Harvey Nichols)에서 백화점 로고가 찍힌 캔에 든 티를 사보자. 하비 니콜스는 백화점 식품 매장이 이렇게 세련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최고의 장소다.

홍난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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