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크렘린 자본주의' 득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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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러시아에 '크렘린식 국유화 자본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겉으로는 사(私)기업을 인정하지만 실제 주요 산업은 국영기업이 장악해 사실상 옛 소련의 국가 주도형 산업체제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000년 집권한 이후 에너지와 군수.항공.조선.금융산업에 이어 제약과 도로 건설.어업 등의 분야에서도 국유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5일 보도했다.

푸틴은 지난달 말 군산(軍産) 복합 국영기업인 로스테크놀로기 설립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 기업은 러시아 최대 무기 수출업체인 로소보론엑스포트의 자산을 인수하며, 자동차와 일반 제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힌다. 푸틴 지지자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 법안은 이달 중 통과될 전망이다.

푸틴은 7월 초에도 30여 개 국영 원자력 발전 기업들을 합친 '아토메네르고프롬(원자력산업집단)' 설립을 지시해 현재 의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기업은 가스프롬(천연가스).로스네프트(석유)와 함께 러시아 3대 에너지 기업으로 떠오르게 된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가 세계 에너지 시장을 주무르기 위해 에너지 공룡기업을 만드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경기장과 도로 등의 건설을 총괄할 국영기업 설립 법안도 의회에서 대기 중이다. 크렘린은 제약과 도로 건설, 어업 기업들도 산업별로 통폐합해 거대 국영기업을 만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미 수호이.일루신 등 6개 항공기 업체와 우주산업 관련 6개 업체, 3개 국영 조선소도 각각 통폐합해 덩치를 불렸다.

러시아 관리들은 "천연자원 수출에 의존하는 러시아 경제를 빠르게 다각화하기 위해서는 국영화가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러시아가 시장 개혁에는 집중하지 않고 산업 국유화 정책에만 힘을 쏟아 경영의 비효율을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장주의자인 아르카디 드보르코비치 푸틴 대통령 경제담당 보좌관도 "민간 영역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산업 국영화'는 극도로 위험한 발상"이라며 "이는 궁극적으로 경제 성장을 정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재홍 기자

<거침없는 러시아의 국영화>

▶의회에 계류된 국영기업 설립 계획

-로스테크놀로기:국영 무기수출업체 로소보론엑스포트 자산 인수. 자동차·티타늄·일반제조업도 운영

-아토메네르고프롬:30여 개 국영 핵 관련 기업 통폐합

-소치 올림픽 추진 기업:2014년 올림픽 위한 수십억 달러 프로젝트 총괄

▶새로 생기는 국영기업

제약, 도로 건설, 어업 기업 업종별 통폐합 추진

자료: 월스트리트 저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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