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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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너는 내게서 멀어져 간다 시간이여
너의 날갯짓은 내게 상처를 남겨 놓는다
그러나 나의 입은 어쩌란 말인가?
나의 밤은 그리고 낮은?
집도 없으며
기거할 수 있는 조그만 곳도 없다
내가 나를 바치는 모든 사물들은
부자가 되어 나를 마구 써 버린다


날아가는 시간이 있네. 뛰는 것도 아니고 나는 시간을 보네. 그 날갯짓에 밤도 낮도 집도 다 흘러 가 버리네. 1904년 5월 9일자로 되어 있는 엘렌 케이에게 릴케가 보낸 편지가 생각난다. 시골에 양친의 집도 낡은 물건도 창이 있는 조그만 집도 없다고 적고 있는 릴케의 심각한 부재의 상실감은 실제의 시간이기보다 영감의 시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시인일 것이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이여. 그대가 그대를 바친 사물들은 그대를 먹고 마구 그대를 써 버려 발몽 요양소서 눈을 감았나요. 그대 묘비명 위로 지금도 시간이 흐르네요.

<신달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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