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미얀마와 파키스탄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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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에서 시작한 아시아의 현대화 물결은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의 네 마리 용을 거쳐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과 같은 아세안 국가, 그리고 중국과 인도에 밀어닥쳤다. 지금은 파키스탄과 서아시아로 확산하고 있다.

나는 최근 파키스탄의 정치적 충돌 위기 때 몇 주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7년간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는 지난달 귀국을 시도했지만 수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서 곧바로 사우디아라비아로 재추방됐다. 세계는 이 사건으로 정치적 파장이 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다시 잠잠해졌다. 파키스탄의 엘리트들이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샤우카트 아지즈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경제도 고도 성장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교역과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고 있다.

파키스탄에는 여전히 수천 개의 이슬람 학교(마드라사)가 있고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강하다. 1960년대 말레이시아 대학 캠퍼스를 방문했을 때 몇몇 무슬림 여성만 히잡(머릿수건)을 쓰고 있었다. 오늘날 같은 캠퍼스에는 거의 모든 여학생이 이슬람식 두건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인 파키스탄 대도시 라호르에 있는 사립 LUMS대학에서는 5%의 여성만이 히잡을 쓴다. 사회적 자유가 느껴진다.

파키스탄에선 군부가 비난을 받긴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넘쳐나고 있다. 다수의 파키스탄 TV 방송은 해외로 추방된 샤리프 전 총리와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있다. 사법부 독립을 위한 공개 저항도 ‘개방 사회’ 성향을 보여준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정부에 비협조적인 이프티카르 모하메드 초드리 대법원장을 3월 직무정지시켰지만 7월 20일 대법원의 결정에 의해 복귀를 허용했다.

반면 미얀마의 방송들은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동정을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이 나라는 과거 군부가 몰아낸 대법원장의 복귀를 전혀 허용하고 않는 것은 물론 언론에서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파키스탄에서 핵심적 지위를 맡고 있는 많은 퇴역 장성을 만났다. 다행히도 그들은 미얀마를 외부세계와 단절시킨 탄 슈웨나 마웅 아예 같은 군정 지도자들과 달랐으며, 대화와 협상을 중시하는 미국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비슷한 성향을 보였다. 미국이 파키스탄을 고립시키지 않고 개입하기로 한 결정도 그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 파키스탄 엘리트의 상당수는 미 대학에서 공부했다.

미얀마 군부는 시민과 승려 시위대를 강제 진압한 것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하다. 서방세계는 미얀마 고립화와 경제제재를 더욱 강력히 밀어붙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방법이 효과적일까? 미얀마는 50년 동안 고립돼 왔지만 잘 버텨냈지 않은가. 미얀마 출신인 우 탄트 전 유엔총장의 손자 탄트 민트우는 “외부의 압박이 민주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또 “20년에 걸친 봉쇄와 원조 중단, 금수조치, 외교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왜 미얀마 군부는 더 힘을 키울 수 있었는가”라고 반문했다. 미얀마의 장군들은 바깥세계와 담을 쌓음으로써 순수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수많은 파키스탄 장군이 미국을 찾았는데, 그만큼 많은 미얀마 장군이 미국을 방문했다고 가정해 보라.

나는 파키스탄이 떠오르는 아시아의 일원이 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았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그곳을 떠났다. 미얀마에서도 그런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미얀마 국민은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키쇼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스쿨 학장

정리=한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