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공산주의자도 예의 있다" 2007년 짧은 악수 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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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흔들며 맞이하고 있다(左).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이 2000년 때와 사뭇 다르다. 허리가 아픈 듯 오른쪽으로 몸을 굽힌 상태에서 노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2) 김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순안공항에서 만나 악수를 나눈 뒤 부둥켜안고 환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左).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일 낮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처음 만나 격식을 갖춘 채 짧게 악수하며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3)2000년 김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의장대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어깨를 나란히한 두 정상이 밝게 웃고 있다(左).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 김 위원장의 얼굴이 굳어 있고 노 대통령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평양=연합뉴스·중앙포토]

2007년 10월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말이 없었다. 표정도 딱딱하고 근엄했다. 환한 웃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맞이하던 2000년 6월 1차 회담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거침없는 발언과 활기차고 호방한 몸동작도 찾아볼 수 없었다. 7년 전의 '호탕한 김 위원장'은 '무표정한 김 위원장'으로 바뀌었다.

그런 차이는 4.25 문화회관 앞의 2007년 10월 2일 환영식과 2000년 6월 14일 순안공항 영접을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2000년 김 위원장은 전용기로 도착한 김 전 대통령을 트랩 아래에서 박수를 치며 기다렸다. 김 전 대통령이 내려오자 그는 몇 발 앞으로 다가서며 두 손을 마주잡고 5초 동안 힘차게 흔들었다. 김 위원장과 김 전 대통령은 카펫 위를 걸어가며 줄곧 웃는 표정으로 대화했다.

반면 4.25 문화회관에서 김 위원장은 별다른 제스처나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노 대통령과 나란히 카펫 위를 걸으며 상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사열을 마치고 우리 측 특별수행원들과 악수를 나눌 때 그의 표정은 비로소 약간 풀렸다. '다변'이던 말수도 부쩍 줄었다.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과 짧게 악수하며 잠깐 인사말을 나눈 것을 제외하면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우선 김 위원장의 나이를 들 수 있다. 2000년엔 58세였으나 지금은 65세. 7년의 세월이 표정과 행동 양식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7년 전 순안공항에서와 같은 옷차림, 비슷한 헤어스타일로 나타났다. 그러나 머리 숱은 줄었고 흰머리도 눈에 띄었다.

노 대통령보다 먼저 환영식장에 도착, 차에 내려 걸을 때 그의 걸음은 느릿느릿했다. 1차 회담 때 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 김 위원장을 가까이에서 관찰했던 양무진 경남대 교수는 "7년 사이 주름살이 늘어나는 등 전반적으로 노쇠한 티가 난다"고 말했다.

회담 상대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서 노무현 대통령으로 바뀌었다는 점도 큰 요인이다. 북한 전문가인 유영구 현대사 연구소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 경력 등으로 북에서도 존경의 대상이었고, 김 위원장보다 연장자였던 반면 노 대통령은 4살 연하여서 의식적으로 근엄한 태도를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00년 1차 회담 당시 "공산주의자에게도 예의가 있다"며 김 대통령의 보폭에 맞춰 걷는 등 세심히 배려했다.

김 위원장의 표정이 전략적으로 연출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노 대통령에게 의도적으로 딱딱한 표정을 보여 회담을 앞두고 기선을 제압하려는 심리 전술이란 의미다.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에서 김 위원장의 가게무샤(대역)를 했던 남북회담 전문가 김달술씨는 "김 위원장은 상대방을 긴장시켰다 풀어주며 쥐락펴락하는 등 사람을 다루는 심리전에 능하다"고 말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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