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아나운서도 언론인 … 연예인과 달리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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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추석 연휴에 TV를 많이 볼 것 같은데 조사결과는 정반대다. 스타를 동원해 만든 특집 프로그램도 시청률 10% 고지를 넘기가 쉽지 않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유독 아나운서들이 등장한 프로들은 괄목할 만한 시청률을 기록해서 화제다.

KBS가 제작한 추석특집은 제목이 ‘아나운서의 비밀’이다. ‘고려청자의 비밀’보다 시청자의 눈길이 더 가도록 고심(?)한 타이틀이다. 미리 네티즌 투표를 통해 답을 구했다. 겉은 단정해 보이지만 실생활은 전혀 다를 것 같은 아나운서는 누구인가, 화장을 안 하면 못 알아볼 것 같은 아나운서는 누구인가. 여성 아나운서의 주량도 소개했는데 소주 네 병을 앉은 자리에서 비운다는 자백도 나왔다. 출연하지 않은 아나운서에 대한 뒷담화가 듣기에 거북했는데 당사자라면 결코 유쾌하지 않을 내용이었다. 재벌 2세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는 고백에 이르러서는 자랑인지 자책인지 모호했다.

MBC 차림표에는 ‘스타 맞선 러브러브 스튜디오’가 올랐다. 총각 연예인들의 상대는 전원이 자사 소속 여성 아나운서들이었다. 자발적 출연이 아니었을 듯한데도 회사에 대한 충성심인지, 연예인에 대한 동경심인지 시종일관 즐거운 표정을 연출했다. 과연 일회용 이벤트일까, 혹은 실제 상황일까. 순진한 시청자들은 파트너가 결정되는 순간보다 녹화 뒤의 풍경이 훨씬 궁금했을 것이다.

이쯤해서 나올 만한 질문. 도대체 연예인이야, 아나운서야? 백과사전에 따르면 아나운서는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에 속하여 뉴스 등을 고지 전달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사람 또는 그 직업’인 반면 연예인은 ‘연예에 종사하는 배우·가수·무용가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곧바로 ‘연예’를 들추면 ‘대중 앞에서 음악·무용·만담·마술·쇼 따위를 공연함, 또는 그런 재주’라고 나온다.

한국 사회에는 연예인을 겨냥한 이중의 잣대가 존재해 왔다. 한편으로 선망하면서도 일면 무시하는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아나운서더러 연예인이라고 부르면 당사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개그 프로에서라면 “나 필기시험 통과한 사람이야” 혹은 “나 토익 900점 넘은 사람이야” 같은 대사가 나올 법하다.

백과사전도 수정해야 하지만 아나운서라는 직업 자체의 전문성, 정체성도 고민해 볼 때가 왔다. PD를 선발할 때 드라마·예능·교양 세 분야로 나누듯이 아나운서도 보도·예능·교양 등으로 장르를 가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나운서는 언론인이다.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도리가 사라지면 무리가 따른다. 언론인협회에도 가입하고 연예인협회에서도 회비 없이 활동하는 건 혼란스럽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전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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