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지향적 평화체제 되도록 협력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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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12면

남북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어떤 문제를 다루게 될까. 가장 비중있게 논의할 사안은 무엇이고, 또 어떤 결론 도출이 바람직할까. 2000년 1차 정상회담의 실무를 총괄한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통일부 장관ㆍ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을 만나 이들 문제를 짚어봤다.

1차 정상회담 실무 총괄 임동원 전 국정원장 인터뷰

-남북이 지난 8월 8일 동시에 발표한 정상회담 개최 합의문에 따르면 회담의 관심 분야는 세 가지다. 한반도 평화, 민족 공동번영, 통일이다. 1차 회담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어느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것으로 보는가.
“1차 정상회담 때도 세 가지 분야를 논의했다. 순서는 통일, 평화, 교류ㆍ협력이었다. 교류ㆍ협력은 번영이다. 세 가지 다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최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는 평화라고 생각한다. 평화 없이 번영과 통일은 물론 경제협력과 남북관계 확대ㆍ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가능성의 문제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집권 이래 6년 동안 대북 적대시 정책을 취해왔다. 네오콘이 주도했다. 그런 부시 행정부가 올해 초 대북 포용정책으로 급선회했다. 부시 행정부에 북한은 더 이상 ‘악의 축’‘폭정의 전초기지’가 아닌 것으로 됐다.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해 나가면서 평화공존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회를 잘 활용해서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주변 4강이 포함된 6자회담에서 이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합의를 본 점이다. 유사 이래 처음이다.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인 미ㆍ중, 남북이 아마 연내에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할 것이다. 분단을 고착시키는 현상유지적인 평화체제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가 될 수 있도록 남북이 사전에 먼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평화문제 논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2002년 4월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한 임동원 당시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가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측의 어린이로부터 환영 꽃다발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평화문제의 구체적 논의대상은 무엇이라고 보나.
“1차 회담에서의 평화문제는 어떻게 전쟁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긴장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인가가 핵심 관심사였다. 하나는 불가침과 군사적 긴장완화다. 이를 위해 그해 9월 남북 국방장관 회담이 열렸다. 다른 하나는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 해소였다. 1차 회담 이래 7년 동안 상황은 변했다. 이제 한반도에서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논의할 때가 됐다.

여기에는 세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첫째는 비핵화 문제다. 북한의 6자회담 합의 이행 의지를 확인하고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떻게 협력할지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남북 간 군비통제다. 남북이 철도를 연결시켜 놓고도 통행이 되지 않은 것은 군사적 보장이 안 돼서였다. 이제부터는 경제협력과 군사문제가 같이 해결돼 나가야 한다. 상호 군비감축 문제를 협상해야 한다. 이것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유럽은 십수 년이 걸렸다. 이 문제는 국방장관 회담을 열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세 번째는 조만간 4자(남북, 미·중)회담이 열리게 돼 있다. 남북이 4자회담에서 논의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협의의 물꼬를 터야 한다.”

-평화체제 구축 문제와 관련해선 평화선언, 평화협정 등 여러 개념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어디까지 논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평화체제는 하나의 프로세스다. 이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3단계로 진전돼야 한다고 본다. 첫 번째는 선언적 조치, 두 번째는 실질적 조치, 세 번째는 법적 조치다. 선언적 조치는 4개국이 모여 ‘자, 한국전쟁 종식시킵시다’라고 합의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종전 선언이다. 하지만 이것은 종전의 선언이 아니라 ‘앞으로 종전을 위해서 이러저러한 실질적 조치를 취합시다’는 선언이 될 것이다. 유럽도 그렇게 했다. 유럽은 1975년 헬싱키 프로세스에 합의한 후 15년 동안 실질적 조치를 취하고 나서 파리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실질적 조치는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이다. 미·북 적대관계가 해소돼야 한다. 또 남북 간에도 적대관계 해소를 위해 취할 조치가 많이 있다. 저쪽에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하고, 우리는 인권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또한 북한 핵문제도 해결돼야 하고, 남북 간에 군비통제도 이뤄져야 한다. 미·북 적대관계 해소, 북핵문제 해결, 군비통제 등이 어느 정도 실질적으로 진척되어 평화를 담보할 수 있게 될 때 법적 조치인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협정에 합의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평화선언을 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이것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남북은 이미 평화선언을 해놓았다. 91년 남북 기본합의서를 통해 불가침에 합의했다. 불가침 합의 속에는 평화선언에 들어갈 내용이 다 들어 있다. 남북 간에 전쟁하지 말자, 비방하지 말자, 분쟁문제는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 군비통제하자 등등. 이런 것들이 평화선언에 포함될 내용이다. 한번 해놓았지만 다시 한번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선언은 남북 간에 이렇게 해나가자는 것이지 평화가 되었다는 선언은 아니다.”

-두 번째 의제인 민족 공동의 번영 문제는 경제협력을 달리 표현한 것 같다.
“1차 회담에서는 남북 간 교류ㆍ협력 실천으로 신뢰를 다져나가는 것이 평화를 만들고 통일에 접근하는 시발점이라는 데 합의했다. 그렇다면 교류ㆍ협력은 무엇부터 할 수 있는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했다. 그래서 5대 중점과업에 합의한다. 철도ㆍ도로 연결, 금강산 육로관광을 포함한 관광사업 확대, 서해안 지구 산업공단 건설(개성공단), 이산가족 상봉, 사회ㆍ문화ㆍ체육 각 방면의 인적 왕래와 교류가 그것이다. 지금은 7년 전과 비하면 많은 변화가 생기지 않았나.

경제문제와 관련해선 세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지금까지 해오던 경제협력 사업들을 확대ㆍ발전시키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2, 3단계로 확대해야 한다. 아직 1단계도 안 끝났다. 제2의 개성공단 개발 얘기도 나오는데 개성공단을 2, 3단계로 확대하는 것도 바쁘다. 지하자원 공동개발, 경공업ㆍ농업 지원 등도 확대ㆍ발전시키는 문제가 있다. 두 번째는 북한의 산업기반 시설을 현대화하기 위한 투자사업이다. 전력, 철도, 항만 등이다. 이것은 허황된 얘기가 아니다. 우리 기업들이 투자하려면 좀 버겁다. 그러나 6자회담에서 북한이 핵 불능화 조치를 취하면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하도록 돼 있다. 이것은 국제금융기구에 북한이 접근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의미다. 국제금융기구에서 재원을 끌어들여 우리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세 번째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남북 경제공동체를 건설해 나가는 것이다. 유럽은 유럽경제공동체(EEC)에서 유럽연합(EU)으로 발전했고, 유럽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도 통일을 이루려면 경제통합을 거쳐 정치통합으로 가야 한다. 이제 경제공동체를 형성해야 할 때가 됐다. 이것의 물꼬를 트는 것은 역사적인 일이 될 것이다.”

-통일문제에 대해 남북은 1차 정상회담에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6ㆍ15 공동선언 2항)고 합의했다. 이 조항에 대한 설명부터 듣고 싶다.
“1차 회담에서는 통일문제가 전체 회담시간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또 제일 중요한 문제였다. 남북이 적대적인 통일관을 갖고 마주앉아 ‘관계 개선하자’고 얘기해봤자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통일문제에서 어느 정도의 공통인식이 있어야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있고, 교류ㆍ협력도 할 수 있다고 봤다. 남북은 통일을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룩해 나가야 한다는 데 합의한다.

남쪽이 주장하는 남북연합은 통일의 형태가 아니라 통일을 준비해 나가는 단계의 협력 형태다. 이것을 북측이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 북측은 먼저 연방국가로 형식적으로 통일해놓고 교류ㆍ협력하자고 했다(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 그러나 그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군대통합을 하지 않은 채 연방제로 통일했으나 결국 전쟁을 초래한 예멘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법적 국가통일’에 앞서 남북이 평화공존하면서 서로 오가고 돕고 나누는 ‘사실상의 통일 상황’부터 이룩하자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것이 6·15 공동선언 2항이다. 북쪽은 연합제를 수용하면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용어를 쓰겠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6ㆍ15 합의 이후 통일논쟁은 사라졌고, 통일은 현재 진행형으로 진척되고 있다.”

-그러면 이번 회담에서는 통일문제에 대해 무엇을 다뤄야 할 것으로 보나.
“1차 회담에서 통일을 과정으로 보고 공동관리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이제 그 관리기구를 어떻게 만들지를 논의할 때가 됐다. 남측의 통일방안인 남북연합은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 그 밑에 남북 각료회담과 각종 공동위원회를 두는 것이다. 남북 국회 대표들의 모임도 있다. 이것의 제도화가 남북연합이다. 북측과 그런 방향으로 가자고 대체적인 합의를 봤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것이 없다. 이제 남북 정상회담을 해마다 한 번 하고, 국방ㆍ경제ㆍ사회문화ㆍ체육장관 회담을 정례화할 때가 됐다. 노동당 통일전선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남북 장관급 회담을 졸업할 때가 된 것이다.”

-남북 공동관리기구 부분은 1차 정상회담에서 공표되지 않았는데.
“연합제라는 것은 공동관리기구를 남북이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 이번 회담의 논의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어디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는가.
“북한은 지금 두 가지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나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다. 두 번째는 경제회생이다. 이 두 가지 모두 남쪽의 협력 없이는 어려운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남쪽이 반대하거나 방해하면 되기 어렵다. 남쪽의 협력이 긴요하다. 대북 경협 확대, 투자도 관심이 많은 분야인데 그것이 되려면 군사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북측은 군비감축을 남측보다 더 절실히 원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북측은 북방한계선(NLL)과 한·미 연합훈련 문제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 스타일은.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한다. 도중에 말을 방해하지 않고 30분 얘기하면 끝까지 열심히 들어준다. 그 다음에는 진지한 토론을 좋아한다. 자기가 완전히 이해하고 수긍할 때까지 토론이 전개된다. 물론 자유토론 형식이다. 30여 년 동안 노동당의 요직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던 만큼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있고 두뇌회전도 빠르다. 현장에서 수긍이 가고 이해가 되면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라고 하는 결단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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