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의 Winning Golf <21>심판보다 더 무서운 ‘매너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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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17면

‘상대가 룰을 지키지 않으면 감정(Mental)이 흔들리고 스코어가 춤을 춘다고요?’

정말 민감한 부분이다. 골프 규칙은 기본이고 내기골프의 룰 또한 공평하고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 쪽의 감정이 더 상한다. 어떤 ‘판’이나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의 감정이 더 상하게 마련이지만 특히 골프에서 동반자의 규칙 위반은 속병이 된다. 상대의 플레이가 룰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치사하게 말을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하는 그런 생각만으로도 짜증이 난다.

‘꼭 내 손에 피(상대의 위반 사실을 공론화하는 일)를 묻혀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면 입을 다물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골프는 심판이 없기 때문에 상대의 규칙 위반이 반복되면 내성적인 골퍼에게는 울화병(?)이 된다. 이는 두말할 필요 없이 ‘집중력이 흔들리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이미 그 판은 깨진 것이나 다름없다. 골프에서 ‘판이 깨진다’는 소극적 의미는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누군가 그날의 게임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일행 중에 입바른 소리를 잘 하는 동반자가 있게 되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골프게임에서 판이 깨질 듯 깨질 듯하면서도 끝까지 18홀을 홀아웃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심판(룰)보다 더 무서운 ‘매너님’이 있기 때문이다. ‘매너 없다’는 불명예를 혼자서 뒤집어쓰기에는 항구적으로 출혈이 너무 크다. 룰 위반이야 그때그때 잘잘못을 따지면 되지만 ‘매너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손님(?)이 떨어진다. 한마디로 ‘왕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서로에게 난감한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맨 처음부터 룰을 정확히 정해야 한다. 큰 틀은 골프 규칙을 그대로 따르면 되지만 카트 패스에 놓인 볼의 드롭 문제 등은 정확한 원칙을 정해 통일시켜야 한다. 골프 규칙에 의해 그 상황별로 세세하게 룰을 적용하는 것이 어려우면 특정한 게임에서만큼은 통일시켜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동반자 모두가 합의하면 된다. 퍼팅 그린에서의 OK 거리도 일관성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 보통 퍼터의 샤프트 길이 이내의 거리로 통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슷한 거리인데 윗분이거나 가까운 사람한테는 OK이고, 아랫사람에게는 “한 번 더 해봐”라고 말을 바꾸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홀에 더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너무 멀다”며 원칙을 지키게 되면 오히려 비슷한 거리에 있는 동반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 즉 룰을 지키는 쪽은 철저한 원칙론자이면서 매너 좋은 사람이 되고, 상대에게는 부담을 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설령 내기에서 돈을 잃더라도 이것이 바로 이기는 골프다.

이 밖에 내기의 결과에 대해서도 명확해야 한다. 셈은 끝까지 하고 일정액의 ‘반환 룰’이 있으면 정확하게 그 비율에 맞게 돌려주거나 돌려받으면 된다. 또 캐디피면 캐디피, 저녁 식사비면 식사비 등 그 사용처가 분명해야 그날 모두의 라운드가 즐거운 법이다. 혼자서 즐거운 라운드는 사랑받지 못한다.

<브리즈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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