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의나!리모델링] 네 탓, 조상 탓, 조건 탓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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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을 하는 P씨(32·여)는 알코올 문제를 해결하려 병원을 찾았다. 일이 끝나고 한잔씩 마시던 술이 어느새 중독 수준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 해결을 바라는 표면적인 태도와 달리 자기합리화라는 갑옷을 입은 그녀의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수많은 문제만 나열하고 주변 사람들을 탓할 뿐, 정작 중독에 대한 자신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문제를 키우고 책임을 떠넘기는 자기합리화의 태도는 그녀만의 문제일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늘 양면적인 존재다. 우리 안에는 어떤 문제라도 해결하려는 불굴의 정신이 있지만, 어떤 잘못도 용납하고 문제 안에 안주하는 기질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합리화를 잘못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흔히 이솝우화의 ‘여우와 포도’ 이야기를 부정적인 합리화의 예로 사용한다. 나는 여기에 의문을 가진다. 만일 여우가 포도를 얻으려는 노력을 하지도 않고 포도가 덜 익었을 거라며 지나쳤다면 부정적인 합리화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우는 무더운 여름날 수차례의 점프를 통해 포도를 따는 것이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억지를 부리지 않고 체념한 것은 그 이유가 궁색할지라도 ‘합리적 합리화’가 아닐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와 달리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거나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도 떠넘기고 마는 부정적인 합리화다. 이러한 부정적인 합리화는 문제를 심화시키게 마련이고 이를 무마하기 위한 더 큰 자기합리화를 필요로 하기에 습관이 된다.
 
 습관적으로 자기합리화를 보이는 사람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투사(投射)형이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나 잘못을 타고났거나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비난한다. ‘원래 이렇게 태어난 것을 어떻게 해?’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어’와 같은 식이다. 둘째는, 소신(所信)형이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문제라고 보지 않고 자신의 철학임을 강조한다. 이들은 투사형보다 좀 더 심각하다. 문제에 대한 책임은커녕 문제라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으름이 문제라면 이들은 ‘나는 게으름뱅이가 아니라 귀차니스트야’라고 소신을 부여한다. 셋째는 조건형이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어떤 조건이 부족하거나 맞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한다. 즉, ‘내가 조금만 더 젊다면~’ ‘처자식만 없다면~’ ‘좋은 기회만 온다면~’ 등의 합리화를 시도한다. 이들은 최적의 조건이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만들어갈 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넷째는 자기혐오형이다. 자기 비난 역시 자기합리화다. 왜 그럴까? ‘이러는 내가 싫어요’ ‘난 무능한 인간이에요’와 같은 자기비난은 애초부터 자기반성과는 무관하다. 문제를 개선하거나 책임지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자기비난에는 스스로 이만큼 벌을 주었으니 잘못에 대한 대가는 치르지 않았느냐는 고도의 자기합리화가 깔려 있다. 잘못을 저지르고 몸으로 때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이들은 비난으로 비난을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자기합리화 습관을 고쳐 보자.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mt@mentaltraining.co.kr

자기합리화 습관 고치려면
①‘이것은 나의 선택인가?’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자기합리화에서 벗어나려면 야구의 수비수가 ‘마이 볼!’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마이 초이스(My choice)!’라고 외쳐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해서만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떠넘기지 않기 때문이다.

②종이를 준비해서 습관적인 자기변명을 적어본다. 글로 적을 때 우리는 비교적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으며 그럴 때 자기변명을 찾을 수 있다.

③이번에는 자기변명을 자기긍정의 마음으로 바꿔 적어본다. ‘~ 때문에 못 하겠어.’ 대신에 ‘~하더라도 ~을 하겠어!’라거나 ‘~하지만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라는 문장으로 바꿔본다. 예를 들면 ‘나이가 많아서 못하겠어!’라는 합리화 대신에 ‘늦었더라도 해보겠어.’ 혹은 ‘나이가 많지만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바꿔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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