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규제완화(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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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경제행정규제 완화를 이른바 「신경제」의 핵심과제로 내세워왔음에도 기업들은 아직 그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이 최근 발표한 「토지부문 규제현황과 개선방안」은 이같은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다. 전경련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각종 행정절차를 거쳐 공장을 짓는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미·일·대만 등의 2∼5배에 이른다. 공장이나 공단을 설치하는데 적용되는 46개의 각종 법률,51개에 이르는 관련기관,미국의 15배에 이르는 3백36건의 구비서류 등 각종 행정요구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절차는 당연히 인력과 비용의 추가 지불로 이어진다. 전경련은 국내 기업들이 총투자규모 3백억원의 공장을 짓는데 필요한 행정절차를 거치기 위해 투자금액의 10%에 가까운 28억원이란 기회 손실비용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달포전 국책연구소인 산업연구원은 국내의 경제행정규제를 일본 수준으로 완화할 경우 국민총생산은 3∼12%,미국수준까지라면 16∼27% 증가할 수 있으리란 분석을 내놓은바 있다. 불필요한 규제는 이처럼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가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지난 4월말 대한상의에서 「경제행정규제 완화의 성과와 과제」를 주재로 한 세미나가 있었다. 법률이나 규정상의 각종 규제가 상당수 완화·폐지됐음에도 기업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를 체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규제의 고삐를 틀어쥔 정부조직과 일선 인력의 「관행」과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미나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은 기조연설을 통해 『대부분 규제는 정책적 필요에 의해 정당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규제개혁이 반드시 규제철폐,즉 규제를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직접규제에서 간접규제로,사전규제에서 결과에 대한 사후규제로의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바 있다.
우리는 경제수석의 발언에서도 나타났듯 규제개혁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이 아직도 철저하지 못하다고 본다. 그 결과가 정부 11개 부처가 매달려 지난 1년여동안 요란스러운 규제완화 작업을 펼쳐왔음에도 정작 기업들은 이를 느끼지 못하는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국회경쟁력특위의 연구실장은 한달전이 특위 발행의 연구주보에서 『1∼2년간의 규제완화 노력에도 불구,진입장벽을 허문 산업은 83개중 5개에 불과하다』며 『사고방식의 일대전환이 없으면 현재 진행중인 규제완화작업은 겉치레에 불과하다』고 공박했다. 『규제완화는 반별로 다룰 것이 아니라 부작용의 위험부담을 안고라도 과감한 일률적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규제개혁은 바로 이런 근본적인 인식전환에서 새로 출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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