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성, 황수 사장 “뚜렷한 정체성 없는 사람은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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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매킨지의 굽타 회장은 “21세기는 인재확보 전쟁(War for talent)의 시대”라고 강조한 바 있다. 또 ‘Good to Great’에서 짐 콜린스 교수는 “기업문화 관리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에 적합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전용 헬기를 타고 전 세계 인재를 만나러 다닌다. 한 국가를 넘어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국내 기업과 다른 인재 발굴과 육성 방법을 가지고 있다. GE코리아 황수 사장과 IBM코리아 이휘성 사장이 인재 육성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사회(이석호 기자): 두 분이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강점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이휘성 사장(이하 이휘성): 자신의 리더십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에게 이휘성 리더십이라는 게 있듯 황수 사장님에게는 황수 사장님의 리더십이 있겠죠. 자기 가치를 정하고 일관되게 실천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성공할 것이라 봅니다.

황수 사장(이하 황수): 저는 다른 사람보다 덜 똑똑해서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똑똑하고 머리가 빨리 돌아가면 평범한 사람보다 눈에 띄잖아요? 그런 사람일수록 기회가 많아지고 마음이 움직이거나 흔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좀 더 똑똑하고 잘났으면 제 눈에 맞는 회사를 찾았을 거고, 그랬으면 여기까지 못 오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데 주위에 저 말고 그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저는 주어진 일에 대해, 상황에 대해 성실하게 하다 보니 인정하는 회사를 만나게 됐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며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사회: 너무 모범답안만 내놓으시는데요. 그렇다면 GE나 IBM 같은 세계 최고 회사가 원하는 인재가 그저 ‘성실’한 사람입니까?

황수: (웃음) 뭐 그런 건 아니고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성실한 건 참 중요한 덕목입니다. GE에 들어와 처음 영업과 마케팅 쪽에서 일을 했는데 그 일이 제게 강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당시 GE가 강조했던 것이 성장리더였는데요, 성장리더의 특성 중 하나가 ‘외부의 관점’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영업 전문이었으니 고객들과 대화를 통해 외부에서 어떻게 보는지는 잘 알고 있었죠. 그러다가 운 좋게도 제 능력을 인정받게 된 거죠. GE는 맡은 일을 성실히 하다 보면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정도 받고요.

이휘성: 직업인으로서 뚜렷한 자기 정체성이 없는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들어와 무엇을 할 것인지 뚜렷하게 정하지 않는다면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의사결정이라든가 해야 할 것이 많은데 그 모든 결정에서 그 사람의 가치관, 정체성이 드러나죠. 자기 승진을 위해, 자기 이익을 위해 결정하는 사람은 오래 못 갑니다.

사회: 그럼 인간성 좋은 사람들이 결국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씀입니까?

이휘성: 궁극적으로 보면 성공은 그 사람의 인격에 비례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황수: 그 사람이 정말 주인의식을 갖고 있느냐, 정말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고객 만족을 만들어낼 수 있죠. 주인의식이 없느냐 있느냐가 리더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중요한 판단기준 중 하나입니다.

▶이휘성 사장은 IBM코리아에 23년을 근무한 ‘토박이’다. 이 사장은 기업 혁신과 인재 육성을 위해 탄탄한 조직문화 속에서 개인 스스로가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 그런데 왜 많은 직장인이 성공한 리더나 CEO들을 ‘냉혈한’ ‘아첨꾼’ 같은 단어로 술자리에 올리는지 궁금합니다. 두 분 말씀대로라면 인간성도 좋고, 품성도 좋아야 성공하는데 말이죠.

이휘성:(웃음) 그럴 수 있죠. 높은 자리에 있다고 다 인간성이 좋은 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든 좋은 회사는 그런 사람들이 성공하죠. 그리고 제가 말한 인격은 사람 살아가는 인격이 아니고 직업인의 인격 문제입니다. 단순히 가족들에게 잘하고, 이웃에게 잘하는 그런 인격을 말한 건 아니죠.

사회: 두 회사 모두 세계적인 기업이고, 각 분야에서 인재 사관학교라 부를 만한데, ‘야, 이런 인재 육성 시스템은 대단하구나’ 이렇게 느끼신 게 있습니까?

인간성 좋아야 성공가능성 크다

황수: GE의 평가시스템을 국내 기업에서 많이 벤치마킹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내면 회사에서 계속 활력을 불어넣어준다는 겁니다.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아요. 잘했을 때나 잘못했을 때나 상사나 회사로부터 반응이 있죠. 인사 시스템에서 특이한 점은 쓸 사람이 채용하고 내보낼 때도 쓰는 사람이 내보내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더욱 신경을 쓰고, 코치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는 것 같습니다. 평가 시스템도 참 뛰어납니다. 평가를 할 때 바로 위의 보스가 작성을 하지만 보고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사담당자와 보스의 보고를 받는 저, 그리고 제 인사담당자까지 참석해 토의합니다.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하면 그냥 개인적 관계나 감정적 문제로 맘대로 평가를 할 수 없어요.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는데 즉흥적으로 평가해선 토론에서 설득할 수 없죠.

사회: 우리나라도 평가 시스템을 다 도입했지만 GE처럼 제대로 평가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이휘성: 우리나라 기업이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많죠. 하지만 시스템은 문화에 따라 좋거나 나쁜 시스템일 수 있어요. 문화는 그대로 두고 시스템만 들여오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죠. IBM 회장이 한 얘기 중에 “IBM의 최고의 발명은 ‘IBMer’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일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등 기업문화가 다 녹아있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얘기죠.

사회: 평가를 많이 하실 텐데 모든 평가라는 것은 주관적이지 않습니까? 결국 평가자나 CEO의 눈에 비친 것이 중요한데….

황수: 그 부분은 시스템으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죠. 사람이 하는 일은 궁극적으로는 주관적인 면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겸허하게 해야 되고, 그런 자질이 있는 사람이 평가를 해야 되죠. 개인적으로 제가 일하면서 공정하게 평가 받아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가를 하기 전에 항상 경건하게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목욕재계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 겸허하게 합니다. 평가 자체도 제가 하는 일로 기록에 남는 것이거든요. 평가도 리더의 업무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그걸 남용할 수 없는 거죠.

이휘성: 역설적으로 보면 조직에서 평가를 잘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 사람 평가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면 성과가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거라는 거죠. 평가를 잘 내는 사람이 성공하고, 성과를 잘 내는 사람이 평가를 하게 되죠.

사회: 평가를 하는 동시에 평가를 받는 거네요?

이휘성: 그렇죠. 글로벌 기업에서는 그게 특히 심합니다. 내가 저 리더와 일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선택을 많이 받는 것은 좋은 리더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꾸로 리더가 그 사람과 일하고자 하는데 본인이 안 하려는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이 오지 않는 거죠.

사회: 저는 개인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상당히 프로페셔널하고, 그래서 우리 시각으로 보면 각박할 거라고 봅니다. 능력 없는 사람을 데리고 있지도 않을 테고…. 그래서 글로벌 기업들의 ‘인재 육성’이란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워요.

황수: 음… 인재를 육성하죠. 그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일괄적으로 모든 직원을 다 육성하는 건 아닙니다. 어떤 경우든 일반직원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여 줄 때만 GE의 인재 육성 프로그램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직무 관련 교육을 빼곤 한국의 대기업처럼 일정한 기수, 일정한 직급을 다 교육시키는 일은 없습니다. 영어로 하면 픽업 앤 에듀케이션(pick-up & education)입니다. 같은 교육을 받아도 교육받는 사람의 자질이나 태도에 따라 효과도 다릅니다. 회사에서는 본인 능력과 성과만 되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 그런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죠. 결국 자기 스스로 알아서 크는 겁니다.

▶황수 사장은 ‘고객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행하는 것’ 이 기업의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 강조한다.‘정당한 평가’가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GE코리아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휘성: 글로벌 기업은 언제나 발전에 신경 씁니다. 발전이란 것은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거든요. 인재 육성은 교육(educa-tion)을 통해서도 가능하고 훈련(training)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코칭(coaching)이 필요하고 어떤 사람은 실무(OJT)를 통해 성장합니다. ‘인재 육성=교육’이라고 단순 도식화하는 건 틀렸다고 봅니다. MBA스쿨에 보내고, 강의를 듣는 것은 인재 육성의 한 부분이죠. 결과적으로 인재는 회사가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 있는 인재가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 비즈니스 환경은 급변하는데, 인재 육성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인재 육성과 비즈니스 사이클이 안 맞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요즘 젊은이들 기능적으론 천재

이휘성: 보통 인재에 투자한다고 말하는 CEO들은 인재는 10년이나 20년 후에 만들어지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IBM에서는 올해 자신의 일을 더 잘하면 그 사람이 성장할 수 있고, 성장했다고 봅니다. 궁극적으로 장기간 인재 육성 방안이 필요하지만 그가 정말 인재인지, 성장하고 있는지는 단기적인 과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창출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계속 투자하는 것이죠.

황수: GE는 좀 더 현실적입니다. 저희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 때 관련된 책임자들이 부서를 막론하고 모여 실질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계급장 떼고 토론하거든요. 그러면서 문제도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회사의 전략이나 문제해결 방법도 배우게 됩니다. 인재 육성과 비즈니스 현장은 동떨어지면 안 됩니다.

사회: 직원에게 메시지도 보낼 겸 이런 질문 하나 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과 일하고 싶으세요?

황수: 정직하고, 성실하고, 겸손한 직원 이 세 가지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성실함 그것이 창의성과 많은 것을 만들어냅니다. 요즘 정보도 많고 급변하는 세상이지만 사실 근본은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많거든요. 요즘은 똑똑하지 않은 젊은 친구가 거의 없으니 그 점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사회: 요즘 젊은 직원들 보면 어떻습니까?

이휘성: 저희에 비해 그들은 천재들이죠. 기능적으로 많이 준비돼 있어요. 한국 사회나 기업, 리더가 그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는 그게 좀 부족하죠. 요즘 똑똑한 젊은이들이 고시준비나 공기업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사회문제입니다. 회사도 인재를 보면 미래를 아는데 국가도 마찬가집니다.

황수: 이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능력 있고 똑똑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너무 좋아하는 것만 하려 하고, 둘째는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 리더들은 더 힘들죠. 야단맞는 걸 싫어하는 친구들을 잘 도와줘야 하는 매니저의 역할이 힘들거든요.

사회: 어떤 분은 요즘 인재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양(discipline)이 부족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인재를 육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입니까, 평가입니까, 보상입니까? 물론 다 연결돼 있습니다만.

이휘성: 저는 코칭이라고 봅니다. 일률적으로 교육시키거나 평가를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각 개인이 필요한 것을 코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한국에서는 기업들에 그런 것이 없죠. 이게 큰 과제일 것입니다.

황수: 저는 공정한 평가라고 봅니다. 본인의 장단점을 보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또 보상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평가에서 출발합니다. 리더의 평가는 신성한 것입니다. 그것을 함부로 하면 회사도 망하고 본인도 망하고 모두 망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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