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 누굴 찍을 건가 "백성 위해 희생할 사람" 그런 사람 있나 " … "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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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부풀리려는 사회 풍조에 문제가 있다."

미국 워싱턴 대성당에 한국 성모자.순교자상이 건립된 걸 기념하기 위해 방미한 천주교 서울 대교구장 정진석(사진) 추기경이 19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여기서 그는 신정아씨 가짜 예일대 박사학위 사건을 비롯한 최근 유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 파문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서울대 공대(화학공학과)를 다니다 왜 진로를 바꿨느냐는 질문에 그는 성직자가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서울대를 다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 입대를 했다. 기계화부대에서 통역장교를 하면서 전쟁의 실상을 목격했다. 나는 발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공대에 갔다. 그런데 전쟁터에선 인간의 발명품이 전부 살상무기로 쓰이고 있었다. 그래서 공대를 그만두고 신학대학에 갔다. 물건은 누가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가 중요하다. 원자폭탄을 성인이 쓴다면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원자력으로 바꿔서 사용할 것이다."

정 추기경은 '12월 대선 때 누굴 찍을 거냐'는 질문을 받고 "정말로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현재 뛰고 있는 후보 중 그런 분이 있느냐'는 물음엔 미소만 지어 보였다.

서울 태릉 성당의 납골당 건립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이 정 추기경에게 계란을 던진 일이 추기경의 권위를 흔든 것이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그는 "미국에선 법이 말한다고 하는데 한국에선 법관의 판결에 덤벼드는 경향이 있다"며 "국민이 인정하는 마지막 권위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권위가 있어야 물질적으로 발전해도 행복과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말했다. "개인이나 공동체, 집단을 막론하고 과욕 때문에 악을 범한다. 종교인들이 '마음을 비워라' '욕심을 버려라'라고 말하는 건 그 때문이다.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되듯 내 종교를 위해 다른 종교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안 된다. 부부도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면 서로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누구든 타협하면서 살아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서로의 이익에 보탬이 된다고 하는 건 그런 이치에 따른 설명 아닌가."

한편 관광객과 가톨릭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워싱턴 대성당에 한국인 모습의 성모상이 마련된 것은 순교로 뿌리내린 한국 가톨릭의 정신을 미국의 가톨릭과 나누게 됨을 의미한다고 이덕효 성모상 봉헌행사 준비위원장(워싱턴 에피파니 성당 주임신부)은 설명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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