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류의현장>바텔기념연구소 어떤 곳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바텔기념연구소(Battelle Memorial Institute)」는 1929년 고든 바텔이라는 미국의 한 철강사업자 유지에 따라 오하이오 州都인 콜럼버스시에 세워졌다.현재 연구원수는 약 8천명,연간 연구비는 9억달러선으로 콜럼 버스의 본부외에도 워싱턴주 리치랜드,스위스 제네바,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분소를 두고 있다.
바텔은 지금까지 한 사람의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지만그 뛰어난 경쟁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이같이 특출한 경쟁력은 연구소의 흥망이 전적으로 연구의 계약고에 좌우되는 바텔의 독특한 운영형태에서 비롯된 것이다.바텔은연구소 운영에 충당되는 모든 비용을 전적으로 외부로부터 경쟁을통해 따낸 연구비에 의존하고 있다.
바텔은 이에 따라 연구개발력을 상업화에 집중시켜 돈이 되는 분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뛰어들고 있다.대표적인 연구분야만도 국방.항공우주.전자.컴퓨터.산업공정.교통.환경.정보시스템등50개가 넘는다.연간 5천건 내외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바텔은연구비의 약 50%를 국방부.에너지부와 같은 정부기관으로부터 타 연구기관의 경쟁을 통해 얻으며,나머지 절반은 미쓰비시.휴렛팩커드와 같은 기업으로부터 따내고 있다.바텔이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쌓게된 것은 50년대 중 반 세계 처음으로 복사기를 개발한 것이 결정적인 바탕이 됐다.
당시 체스터 칼슨이라는 한 발명가는 「복사기」아이디어를 갖고수많은 회사에 상용화를 부탁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한 끝에 바텔을찾았고,바텔은 곧바로 그의 아이디어를 받아 복사기 개발에 성공했다.이로써 바텔은 70년 2억달러가 넘는 기 금을 확보하고 제록스에서 얻은 이익금으로 과감히 다양한 연구를 시도할 수 있었다. 바텔은 그러나 이같이 이익이 계속 커지자 비영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오하이오 대법관들의 판단에 의해 75년부터 세금이부과되기 시작함으로써 현재 기금이 탕진 일보직전에 이르는등 위기를 맞고 있다.
바텔은 60년대 중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설립을 자문한 기관으로 우리와 인연을 맺었으며,이같은 인연으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여명의 한국인 과학자가 근무하는등 활발한 교류가 있었으나 지금은 뜸한 상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