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산책>우디 앨런 맨해튼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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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우디 앨런의 세계에 접근하는 것은 가령 스티븐 스필버그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보다 어렵다.스필버그의 영화를 보기위해 우리가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하지만 우디 앨런의 경우는 다르다.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요 소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 하기 때문이다.
그의 코미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뉴욕 유대계 지식인들의 일상적인 생활공간과 친숙해져야 한다.그가 웃음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지식인적 삶의 닫힌 공간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세계에 어느 정도 친숙해지면 그의 영화는 대단히 매력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곧 출시되는 그의 신작『맨해튼 미스터리』(콜럼비아)는 그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그 출발점을 대중문화적 상상력에 두고 있다.이번에 그는 명백히 40년대의 탐정영화 내지는 스릴러영화에 그 발상의 뿌리를 두고 있다.뉴욕의 고층아파트 에 사는 래리(우디 앨런)와 캐럴(다이안 키튼)부부는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지식인 중산층의 삶을 살고있다.결혼한지 20년이 지난 이들은 아들을 명문 브라운대학에 보낸,우리식으로 말하면「자식농사」에도 성공한 부부다.어느날 이웃에 사 는 하우스 부인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죽는다.
답답한 일상에서 뭔가 돌파구를 찾던 캐럴은 그녀의 죽음이 살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단정,친구인 테드를 끌어들여 온종일 사건수사에 빠져든다.처음에는 만류하던 남편 래리도 나중에는 사건에끌려 들어가게 된다.
흔히 보는 정통적인 스릴러영화의 기준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사실 엉성해 보이기조차하다.스릴러영화가 의당 갖추어야 할 잘 짜여진 플롯을 이 영화가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디 앨런이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그러한 통속적인 긴장감이 아니다.그는 여기에서 탐정놀이를 해서라도 해소해야할 현실의 단조로움을 은근히 비꼬고 있다.삶이 탐정영화같다면얼마나 좋으랴마는 하는 탄식이 여기에는 숨어 있는 것이다.현실은 두뇌의 명석함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씁쓸함이 이 영화에서는 짙게 배어 나온다.
사생활에 있어 양녀와의 스캔들로 졸지에 파렴치한 인물로 몰리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우디 앨런의 예술가적 자기통제는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확인시켜 준다.
많은 이류예술가들이 흔히 생활과 작품을 구분하지못해 좌절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에게 그런 걱정은 필요없는 것같다.그는 여전히 미국이 자랑할만한 몇 안되는 영화감독중 한 사람인 것이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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