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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 봉투받는건 예사(특진 중병앓는 의료현장: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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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의료비 과다청구·약품비리도 잦아/약품거래 감시기관등 제도개선 시급
『병원이 환자를 속이다니….』
김모씨(69·서울 용산구 동자동)는 지난달 중순 1년만에 병원으로부터 8만1천원을 되돌려받았다. 기관지 천식으로 성남 모병원에 6일간 입원하고 낸 돈은 34만7천원. 그후 병세악화로 서울 다른 병원에 16일간 입원하고 낸 액수는 38만4천여원. 입원기간이 두배이상 차이나는데 비슷한 액수였다. 따져묻자 병원측은 『제대로 청구한 것』이라고 우겼다. 결국 의료보험연합회에 진정,식대의 과다 산정과 특진의사가 하지 않은 검사·처치에 지정진료비(특진비)를 부과한 것을 밝혀낸 것.
병원측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 부담청구 사례다. 환자들은 흔히 당하지만 모르거나 알아도 귀찮아 대부분 그냥 넘겨버린다.
5년간 보사부가 적발한 부당청구 의료기관 및 액수는 ▲88년 1백25곳 6억6천만원 ▲89년 1백82곳 16억9천만원 ▲91년 2백74곳 9억3천만원 ▲92년 2백40곳 11억6천만원 ▲93년 1백86곳 8억1천만원(집계중)이었다.
이는 전체 의료기관 4만여곳중 환자 진정이 많거나 자주 과다청구를 해온 2백∼3백여곳을 대상으로 표본 실사한 내용이므로 실제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보험 환자에 대한 부당·과다청구는 더욱 심하다.
병원들이 교통사고 환자를 장기 입원시켜놓고 의료보험수가에 비해 많게는 수십배까지 청구한다는 것이다. 보험사노조협의회가 최근 교통사고 환자의 치료비가 의료보험 환자의 1.5(병원)∼6배(종합병원)나 돼 자동차보험료 상승원인이라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 이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낮은 의료보험 수가 ▲전문가가 아니면 산정하기 어려운 보험수가 청구방법 ▲의료보험연합회·보험회사의 일방적인 진료비 심사때문에 과다청구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부당청구는 의료비리의 빙산의 일각이다.
의료계 비리·부조리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의약품 거래 비리 ▲의료기기 구입 비리 ▲부당청구 ▲환자로부터 촌지수수 ▲레지던트 등 직원채용 비리 ▲무면허행위 ▲탈세 ▲지정진료제 비리 ▲과잉진료 ▲의료사고 은폐….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이 지난해 6월부터 수집한 의료부조리 유형이다. 마치 병원이 온갖 비리의 온상같은 느낌이다.
대한의학협회가 45세 미만 의사 2천28명(전체회원의 6.2%)을 대상으로한 의식조사를 보면 의료부조리를 실감할 수 있다.
「부조리가 얼마나 심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거의 없음 4.2%,전혀 없음 0.3%로 없다고 본 의사가 4.5%에 불과했다. 반면 매우 심함 7.1%,심함 39.5%로 절반쯤이 심하다고 응답했다. 의사대답이 이 정도이니 환자측의 의료계 불신은 불문가지.
더 큰 문제점은 대개의 부조리가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있다.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약회사로부터 기부금 등을 받은 10개 병원에 과징금을 물리고 뒷돈(랜딩비·리베이트 등) 거래중지 명령을 내리자 병원측에서 반발했다.
관행임을 내세워 7개 병원이 이의신청을 낸 것.
『과당경쟁으로 약품이 정부고시 하한가 이하로 납품되기 때문에 제약회사측이 하한가와의 차액을 병원 발전기금으로 준 것』이라는게 의료계의 「관행논리」.
그러나 제약회사들이 약효·가격보다 로비에 열을 올리는 사이 신약 개발투자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환자들은 비싼 약을 먹게 된다.
지난해 국내 주요 제약회사의 전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율은 2.03%. 미국과 스위스의 16∼17%,일본 12%에 크게 못미쳤다.
환자에 따라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봉투」를 사례비라며 거리낌없이 받는 것도 널리 알려진 「관행」이다.
이같은 관행이 바로 부조리요,개혁대상이라는게 지배적인 의견.
전문가들은 뿌리깊은 부조리 척결을 위해선 무엇보다 의료인의 윤리의식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미국이나 유럽은 의대 교육과정중 의학윤리가 중요과목이다.
반면 우리는 전체 의대의 30%만이 교과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또 선진국들은 공통적으로 「의학윤리강령」 「의료인간 부정감시제도」 등이 활성화대 내부 통제가 강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도 거의 없다.
제도개선도 시급한 실정. 예를들어 의약품거래 관행을 개선하려면 ▲의약품 거래감시기관 설치 ▲공개입찰제 채택 ▲상품명으로 된 처방전을 성분명으로 바꾸는 방법 등이 논의될 수 있다는 것.
또 의료비부담 청구 등을 막기 위해 ▲의료보험 적용범위 확대 ▲자동차보험수가의 정부고시 ▲의료보험 수가의 현실화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조리 척결이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인술」이란 명예를 되찾는 지름길이라는 지적을 의료계 모두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때다.<이규연·장세정기자>
◎병원노련 김유미위원장/“노사함께 참여하는 「비리고발센터」설치 추진”
의료비리 척결운동으로 고발창구((02)795­2347)를 운영하고 있는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김유미위원장(36)는 『현 의료체계로는 비리가 양산될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의료부조리의 근본적 원인은.
▲의료가 상품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교육과 마찬가지로 의료는 공공성을 띠어야 한다. 특히 민간의료가 90% 이상 차지하고 정부지원이 미약한 점이 비리 추방의 걸림돌이다. 잘못된 제도가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저버리도록 강요하고 있다.
­개선방안은.
▲의료구조를 영국·프랑스·독일 등 선진 유럽국가처럼 바꾸고 의료인들의 각성이 병행돼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병원별로 노사 동수의 비리고발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비리척결운동에 대한 반응은.
▲일반시민뿐만 아니라 의료부조리에 염증을 느낀 많은 의료인들이 호응,다소 아쉬움은 남지만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도움말 주신분
▲맹광호 가톨릭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변회연 보사부 보험관리과장
▲성익제 대한병원협회 기획실장
▲김정번 대한손해보험협회 이사
▲최명수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과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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