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추천 펀드 '안으로 굽은 팔' 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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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가 어지러우면 고수들이 판친다. 펀드 세상, 너무 어지럽다. 단군 이래 펀드 숫자, 많아도 너무 많다. 투자자들은 길을 헤맬 수밖에. 이때 고수를 자처하는 증권사가 나섰다. 증권사 본부에서 자산 운용 전략과 관련된 이들이 나서 우수 펀드를 콕 집어 준다. 일단 전문가가 추천하는 펀드라니 귀는 솔깃한데, 팔은 안으로 굽는지라 찜찜하다.

◆'투자의 시대'…앞다퉈 펀드 추천=증권사 이름을 내걸고 가장 적극적으로 펀드를 추천하는 곳은 우리투자증권이다. 5월 2분기 '베스트 컬렉션 펀드'에 이어 이달 초엔 3분기 추천 펀드를 선정, 발표했다. 사내 리서치 조직을 포함한 전사적인 협의체인 투자전략위원회가 나서 지역별.시장별 최고의 유망 펀드를 고른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동부증권도 이달부터 고객에게 매월 '유망 펀드 시리즈'를 추천하기로 했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고객에게 최상의 펀드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게 펀드 추천 이유다. 펀드 선정은 사내 전문가로 구성된 상품선정위원회가 맡는다. 위원회엔 리서치 센터와 리스크 관리, 상품개발 등 시장 분석 및 금융상품 관련 전문가는 물론이고, 영업점에서 고객들의 자산관리 컨설팅을 담당하는 직원들도 참여한다.

삼성증권은 리서치 팀이 나서 '국내+해외+대안펀드'로 구성된 펀드 모델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대우증권은 유망 투자 트렌드를 발굴해 그에 적합한 펀드를 추천한다. 5월 인프라 테마를 선보인 데 이어 최근엔 급등하는 상품시장을 겨냥한 '자원부국' 테마를 트렌드로 제시했다.

◆팔이 밖으로도 굽을 수 있을까=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다. 증권사가 모든 펀드를 공정하게 평가해 유망 펀드를 선정한다고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유독 관계 운용사 펀드가 많다. 동부증권의 경우 동부자산운용의 펀드가 9개 중 3개다. 특히 국내 펀드 5개 가운데 2개가 관계사 펀드다. 우리투자증권도 9개 중 3개가 우리CS운용 상품이다. 삼성증권은 9개 중 삼성투신운용 펀드가 2개에 그치지만 애초에 펀드를 선정할 때 삼성증권이 팔고 있는 펀드만을 대상으로 모델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그나마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사 배려주의에서 벗어나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앞서 2분기 추천 펀드를 선정할 때 국내 펀드로 성과가 우수한 다른 운용사 펀드를 배제하고 우리CS운용의 펀드를 집어넣었으나 3분기엔 이를 뺐다. 대우증권도 5월 인프라 테마 추천 펀드 5개 중 3개를 관계사인 산은자산운용 펀드로 채웠으나 최근 자원부국 테마 펀드에는 하나로 줄였다.

펀드평가사 제로인 허진영 연구원은 "증권사가 펀드를 추천해 주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를 제공해 주는 만큼 바람직한 일"이라며 "그러나 공정한 평가가 힘든 만큼 투자자들이 판매사의 특성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천 펀드라고 해서 가입하더라도 펀드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투자자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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