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김대중 콤플렉스」/김두우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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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3일 열린 국회 외무통일위 회의는 여야의 김대중(DJ) 아­태재단 이사장 콤플렉스가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김 이사장이 미국 워싱턴에서 한 김일성 북한주석 방미초청 발언과 북한핵 관련 발언,여기에 대한 이홍구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반박논평 등이 도마위에 올랐다. 대부분의 회의시간이 이 문제로 소비됐음은 물론이다.
이날 회의는 이 부총리와 상견례를 하는 자리였고 북한핵을 둘러싼 북­미관계의 진전상황과 시베리아 벌목공 처리문제,이에 대한 북한의 보복조치 우려,북한의 붕괴에 대비한 우리의 대책 등 다루어야 할 현안이 산적돼 있었다.
김 이사장의 오랜 측근이자 아­태재단 행정실장인 남궁진의원이 민주당의 대표주자로 나서 『이 부총리는 반박논평이 외압에 의한 것이라고 확인되면 사과하겠느냐』고 말문을 열자 민자당의 여러의원들이 대거 의사진행발언에 나서 『지금 현안이 쌓여있는데 외무통일위에서 좁은의미의 국내 정치문제를 논의하자는거냐』 『일문일답은 관례에 어긋난다』는 등의 반대가 쏟아졌다.
한바탕 정회소동이 벌어진 뒤에야 질의가 계속됐고 남궁 의원은 영문으로 된 김 이사장의 발언내용을 한자 한자 짚어가며 이 부총리의 논평이 오역·왜곡됐음을 입증하려 했다. 남궁 의원은 거의 4시간을 독점하여 영문법과 단어의 해석문제까지 들고 나오는 길고 지루한 논쟁을 벌였고,다른 야당 의원들은 사안이 김 이사장과 관련된 것인 만큼 묵묵히 경청했다.
결국 얻어낸 것은 이 부총리의 『공보처가 주한 외국언론사에 배포한 나의 논평중 일부가 영문번역과정에서 잘못됐다』는 시인 정도였다.
이 부총리는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논평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로 민주당의 끈질긴 공세를 피해갔다. 정계를 은퇴하고 다시는 정치를 안하겠다고 한 김 이사장의 발언문제를 놓고 민주당이 소명운동에 발벗고 나서는 모습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특히 공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정치를 떠난 개인을 위해 귀중한 국회 회의시간을 대부분 할애한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한 민주당 의원은 『언제까지 우리가 DJ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어야 하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김 이사장의 문제만 나오면 계파를 초월해 맞비난하고 나서는 민자당도 DJ 콤플렉스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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