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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유산재조명>3.경제분야 좌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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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16이후 이른바 開發年代를 열면서 한국 경제는 30여년을숨가쁘게 달려와 이제 UR로 상징되는 국제화.개방화의 質的 격변기를 맞고 있다.
격변하는 상황에 어떻게 정치.사회.경제가 힘을 합쳐 대응하면서 21세기를 준비할 것이냐가 우리에게 던져지는 절실한 과제다. 中央日報는 車東世산업연구원장과 崔洸외국어대교수,李根植서울시립대 교수가 참석한 좌담회를 통해 한국경제의 지난날을 돌아보고앞날을 내다보는 자리를 마련했다.본사 張鉉俊논설위원의 사회로 3시간 30분동안 진행된 좌담회의 내용을 요약해 정리한다.
▲사회=우리경제는 과거 개발시대에서 파생된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고,또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선진국이 되기 위해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마련해야하는 갈림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는 시장논리가 중심이 돼야하고 행정규제 완화와 국제화가 필요하다는데는 다들 공감하지만 아직 인식 수준에 머무를 뿐 실천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현재의 문제가 무엇인지,또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과거에 대한 성찰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합니다.
▲車東世산업연구원장=먼저 우리경제의 어두운 면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이제 1인당 GNP 7천달러 시대에다 세계 13위의 무역대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산업구조도 상당히 고도화돼 반도체.자동차.철강.조선은 충분한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부터 어떤 과정을 밟아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가 관건인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 한국의 자본주의가 얼마나 탄탄하게 확립돼 있는가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열심히 일해 돈 버는 것을 명예로운 일로 평가하고 대접해주는것이 자본주의 사회인데 그같은 자본주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 앞으로 선진국과 대등하게 겨루어야 한다면 국가전체의 경쟁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정부끼리의 경쟁력,기업끼리의 경쟁력,근로자끼리의 경쟁력등에서 우리가 이겼다고 내세울 부분을 발견하기는힘듭니다.
임금.금리.사회간접자본.토지공급등에서도 자세히 뜯어보면 선진국보다 약하고 기술도 기초기술과 설계기술에서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으며 가까운 장래에 격차가 축소된다는 전망도 안보여 문제입니다.
▲崔洸 외국어대 교수=車원장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자본주의의 두 기둥이 사유재산권 인정과 자유경쟁이라면 실천적인 면에서 이 원칙이 제대로 관철되고 있느냐부터 따지고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지만 稅制를 뜯어보면 국가의 간섭이 지나친 경우가 많고 자유경쟁도 공정한 경기규칙(Rule of Game)이 마련되었는가와 이것이 엄격히 집행되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李根植시립대교수=두 분의 지적에 동의하면서 단지 강조점을 달리하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유재산제도의 가장 큰 침해자는 국가고 공무원입니다. 이를 막으려면 엄격한 법치주의의 확립밖에 없지요.법치주의가 확립되지 않으면 자본주의도 뿌리내리기 힘들다는 지적이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자본주의의 원동력인 공정한 경기규칙을 침해하는 또 하나의 강자는 재벌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자기 본연의 임무 대신 직분에 따르는 임대료(Rent.利權)에 더 큰 관심을 갖는 후진적인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일련의 교육비리 사건에서 보듯 교육보다는 돈벌이가 우선되고 이같은 「돈 우선」 풍조는 사회의 정상적인 기능을 마비시킬 정도입니다.
경제 주체의 정신을 황폐화시키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자발성에 기초한 생산성 향상과 혁신도 기대하기 힘듭니다.
▲사회=지금 시점에서 바라볼 때는 정경유착과 정부주도의 경제성장이 정치.경제.사회적 혼란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지만 한때는 이것이 오히려 자원의 효율적인 동원과 배분을 위해 필요했다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또 지난 20~30년간 정부와 기업의 관계에서 공정한 게임 룰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효율적인 정부의 개입 사례도 없지는 않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李교수=그동안의 정부 정책이 최선이냐,또 불가피한 것이었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과거 경제정책의 특징이 무엇이냐를 짚어보아야 합니다.
과거 경제정책은 상당히 편협한 성장 지상주의에 기초하고 있었지요.경제발전을 사회발전과 같은 것으로 여기고 GNP 성장률에매달려 국가발전을 GNP 성장률과 동일시하기도 했습니다.
성장에 따른 비용지불은무시됐지요.경제의 효율을 앞세워 지나친정부의 개입이 나타났고 이를 위한 중앙관리 체제가 구축됐으며 형평성과 경제주체의 자율성은 제약당했습니다.
불균형 성장이 전략적으로 추구됐으며,그 결과 대기업 위주의 지원이 불가피해졌고 이것이 오늘날 재벌의 비대화를 가져왔습니다. 비용은 환경파괴에서도 지불되었으며,국민 의식에 미친 영향도지대했습니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금전만능주의를 불렀고 땅값 상승과외환할당의 특혜를 나눠가지면서 기득권층의 윤리의식은 마비되고 돈과 권력이 서로 접근한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 정책 가운데 대외개방 정책은 외부로부터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가져왔다는 의미에서 높이 평가돼야 한다고 봅니다. ▲崔교수=정부의 경제정책은 거시적인 정책 방향도 중요하지만구체적인 정책 결정과정 또한 중요합니다.
과거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기능적인 역할에는 충실했지만 역사의식과 종합적인 사고를 갖고 정책결정에 임했는지 의문입니다.
정책의 긍정적인 요인과 함께 부정적인 영향도 생각하면서 정책결정을 했는가,또 정책의 우선순위를 잘 따져 보았는가 하는 점에서도 선뜻 동의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車원장=우리가 현재 겪고있는 고통은 실패나 좌절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통이지요.
이 고통은 지난날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성공에서 비롯된 것인만큼 전부를 부정하기 보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쪽에 초점을맞춰야할 것입니다.
우리경제가 안고있는 문제의 뿌리는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수있습니다.
우선 출발 당시 하나도 가진 것이 없었던 우리의 현실입니다.
모든 것을 다 충족시킬수 없었기 때문에 희생되는 부분은 불가피하게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우선순위에 따른 정책 추진이 불가피했습니다.
어떻게 정당하게 富를 축적하는가,또 어떤 훌륭한 방법으로 돈을 쓰는가도 모르는 상황,한마디로 문제를 키우며 동시에 배우고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밟아왔지요.
둘째는 기업가.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들이 교육.경험.
윤리에서 선진국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뒤처져 있었습니다.
정경유착과 공무원 부패,기업의 불공정한 경쟁등 여러 문제들이여기에서 파생됐고 뿌리깊은 士農工商의 官중심 가치관도 한몫 거들었습니다.
셋째는 정부의 정책입니다.양심적으로 평가하건대 지금까지의 경제정책이 실패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문제가 있고 불완전하지만 A마이너스나 B플러스 정도의 次善은 된다고 봅니다.
***제도.의식 바꿔야 지금의 문제는 물론 심각하지만 현재까지의 성과를 지나치게 가치 절하하면 앞으로 더 큰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지요.
▲사회=과거의 경제운영 방식에서 산업발전을 위한다는 순수한 의도로 출발했지만 결국 정경유착이 돼버린 이유를 좀 더 따져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자본과 기술.원료를 모두 도입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자연스럽게 기업의 우위에 섰고 기업의 경험 부족 또한 정부의 개입을 불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 윤리적인 기준에서 간단히 매도되지만 생존을 위한 기업의 필요성과 권력 유지를 위한 정권의 필요성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정경유착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요.
▲李교수=정부가 생산활동에 대해 금리.외환.땅값을 싸게 공급한 데는 긍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또 후진국에서는 위험분산을 위해서나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을 불어넣기 위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고 경제학에서도 성장 초기에 정부주도의 발전과 원시적 자본축적이 불가피하지않느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금융과 투자결정까지 정부가 주도했고 이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부문에까지 개입한 것입니다.
민간부문으로 당연히 이행돼야 하는데도 70년대 후반 중화학 투자조정 때까지도 정부개입은 오히려 강화되어 왔지요.
공공투자와 세금,차관도입을 틀어쥐고 있던만큼 정부는 신규업종진입과 투자결정을 좀 더 빨리 민간에 넘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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