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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금산분리정책 완화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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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동물을 가축과 맹수로 구분한다면 소는 가축으로, 호랑이는 맹수로 분류된다. 문제는 너구리나 오소리다. 가축도 아니고 맹수도 아니다. 이런 상황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구분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미국 크라이슬러사의 지분을 80% 정도 획득한 서버러스는 소위 사모펀드다. 이 펀드는 지분취득 후 직접 경영에 참여해 인력을 줄이고 설비를 정리해 해외로 이전하는 등 다양한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바이아웃 펀드다. 직접 경영을 하는 것을 보면 산업자본 같기도 하지만 회사가 정상화돼 주가가 오르면 미련 없이 팔고 떠날 것이라는 면에서 금융자본 같기도 하다.

 미국의 GE는 지주회사 제도를 운영하면서 지주회사 산하에 은행을 제외한 다양한 금융 관련 회사들과 제조업 관련 회사들을 두고 있다. 제조업 쪽 회사가 장비를 생산하고 설치해 주면 금융회사는 리스 서비스를 붙여 고객에게 금융과 제조의 토털 패키지를 제공한다. 또한 신용등급 최우량인 지주회사가 금융자회사에 지급보증을 해 자금을 싸게 조달하도록 도와주고 지원한다. 제조업과 금융업이 한 지붕 아래 동거하면서 도움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상황은 어떤가. 남들은 은산(銀産)분리 정도를 시행할까 말까인데 우리는 은행에 증권·보험·카드까지 금융의 범주에 포함시킨 후 세계 유례없는 화끈한(?) 금산분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조치라든가 금산법 24조, 그리고 지주회사에 금융회사를 편입시키는 것이 불허되는 등의 정책들은 이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금산분리에 적용되는 기본 논리는 소위 ‘사금고화’ 논리다. 금융은 가축이고 산업은 맹수라는 것이다. 맹수는 남의 돈으로 닥치는 대로 투자해 남의 돈을 약탈하고 자기도 망하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가축인 금융은 얌전하게 제조업의 이익에 봉사하는 서포터스요, 도우미다. 이러니 둘 사이에 담장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아직도 타당한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공격성은 완전히 거세돼 버렸다. 우리나라 유수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동종업의 세계적 기업들보다 훨씬 낮아진 지 오래다. 자본부족경제가 자본잉여경제가 되면서 이제 과거의 맹수들은 온순한 가축으로 변모했다.

 따라서 만일 이들 중 일부가 금융업 진출을 시도할 경우 이를 금융업을 사금고화해 금융업과 제조업이 함께 파산하겠다는 시도로 볼 때는 지났다. 그리고 감독기법도 선진화돼 이런 시도를 보고 그냥 넘어갈 리도 없다. 게다가 금융업 진출을 시도할 정도의 기업이면 자기 이름으로 채권만 발행해도 충분히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최근 중국과 인도가 약진하면서 제조업의 이윤율은 자꾸 줄어들고, 앞날이 불투명한 지금의 시점에서 이들은 금융업 자체를 키워 새로운 이익의 원천 내지는 신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제 이 처절한 몸부림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은행이 신용창출기관이라 부담스럽다면 일단 금산분리 대신 은산분리 정책을 시행하면 된다. 나아가 은행 하나 정도는 복수의 산업자본이 참여한 사모투자펀드에서 인수, 경영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론스타도 은행을 경영하는데 우리나라 펀드는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는가.

  금융업은 우리의 미래이자 신성장동력이다. 대기업의 지주회사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글로벌 인수합병(M&A) 활성화, 금융의 탈중개화, 펀드자본주의의 도래, 국부펀드의 출현 등 다양한 움직임 속에서 세계 경제에서 ‘금융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 흐름을 읽고 동참해야 한다. 현재의 금산분리정책은 재고되어야 하고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때가 왔다.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시점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