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 교통 신호체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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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강남구 개포4동에서 고장난 신호등을 믿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국민학생이 차에 치여 참변을 당했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사고 4∼5일전부터 신호등이 고장나 신고까지 했으나 그대로 방치하다 결국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당국의 무성의와 허술한 신호등관리가 사고후에는 40여분만에 신호등이 수리되었다는데서 잘 드러나고 있다. 예방할 수 있는 일을 예방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사고를 통해서도 드러났듯 교통신호체계의 운영과 관리실태가 너무도 엉망이다. 지난해 11월 경찰청이 서울시내의 교통신호체계를 조사한 결과 전자교통신호기중 40%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바 있다. 전자교통신호는 세심한 관리가 기본요건인데 막대한 예산만 들여 설치해놓고는 유지와 관리에는 소홀히해 예산은 예산대로 쓰고 교통소통이나 사고예방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설의 유지와 관리도 문제지만 운영에 대한 전문기술도 부족해 전자신호기가 감지한 정보가 교통통제에 활용도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시설은 시설대로,유지 및 관리는 또 그것대로,운영기술은 기술대로 허점투성이인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교통신호체계에 문제가 많다는건 누구나 느끼고 있는 사실이다. 우선 신호 주기가 교통량과 맞지 않는다. 차라리 교통경찰관에 의한 수동식 신호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거래에 따라서는 횡단보행자가 없는데도 정지신호가 나와 차량흐름을 끊는다. 버튼식 신호등을 설치하지 않은 탓이다. 또 어떤 곳에는 신호등이 어디 있는지 찾기조차 어려워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꼭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없어도 좋을만한 곳에는 촘촘히 신호등이 들어서 있어 체증을 일으킨다.
한마디로 교통신호체계는 주먹구구식이라고 할만하다. 자동차가 발이 되어가고 있는 형편에 이래서야 어디 행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산도 예산이지만 교통신호체계를 담당할 행정조직부터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교통부·경찰·지방자치단체가 저마다 계획과 연구가 다르고,사후관리책임은 서로 남에게 떠넘기고 있는게 현실이다. 현재 서울시와 경찰은 새로운 교통신호체계를 도입할 계획인데 현재의 관리체제로는 또한번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낳기가 십상이다. 행정조직부터 교통정리해서 시설에서 운영·유지 및 관리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행정이 펼쳐져야 한다.
도로를 1% 더 확충하려면 약 2조원이 들고 주행속도는 3%가 향상된다. 그러나 신호시설 및 체계개선에는 그 백분의 1%의 예산으로도 주행속도가 10% 향상된다. 바로 교통신호의 중요성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더 높아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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