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호의 Winning Golf <19> 골프장서 만난 낯선 동반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호 17면

“처음 뵙겠습니다.”

동반자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아는데 나머지 한 사람을 모른다. 물론 그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누군가와 관계가 있기에 그 자리에 초대되지 않았겠는가. 내가 모르는 그 한 사람도 동반자 세 명 가운데 나만 모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알지 모른다. 아니면 세 사람 중 한 사람만 알든가. 아무튼 어색한 가운데 수인사를 할 것이다.

이럴 때 동반자들과 교집합 관계를 가진 초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주에 설명했듯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판’은 벌어지기 때문이다. 서로 ‘내공’을 확인하는 일합을 겨루게 되는 것이다. 낯선 동반자가 낀 팀이 라운드할 때는 서로 실력을 모르기 때문에 대개는 일정한 상금을 추렴해 스킨스게임을 한다.

하지만 호전적인 골퍼가 있다면 스킨스게임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골퍼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매우 강하게 스트로크 플레이를 제안할 것이다. 이때 누군가 “작게 하더라도 스트로크 플레이가 더 긴장도 되고 재미있죠”라고 맞장구를 치면 대세는 정해진다. 좌장 격의 윗사람이 말리지 않는 한. ‘판’은 원래 하수보다 고수들이 주도하는 대로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구면’과 ‘초면’이 섞이는 자리에서는 각자의 핸디캡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없다. 이 문제는 나중에 어느 한두 사람에게 “핸디(캡) 제대로 계산한 거야”라는 의심으로 이어지면서 플레이 흐름에 큰 변수로 작용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내(초대자)가 지난번에 A(초면인 자)와 한번 쳐봤는데 나하고 스크래치 플레이하면 되고, 그러면 우리(초대자와 A)가 B, C에게 각각 6개씩 핸디(캡)를 주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아니, 형님(초대자)하고 A가 스크래치 플레이하면 6개 가지고는 안 될 말이죠!”

“좋아, 그럼 전·후반 해서 8개씩. OK?”

이쯤 되면 이미 ‘견적’은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핸디캡 8개 차이는 좁힐 수 없는 기량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좀 미흡하다 여기면서도 처음 제안받은 6개보다 2개 더 많은 핸디를 받고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A가 아는 동반자라면 초대자의 실력을 감안해 냉정하게 “안 된다”고 할 수 있지만 초면에 더 우기는 것도 볼썽사납기 때문이다.

이때 상대가 나보다 고수라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판단의 기준은 A가 ‘또 볼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언제든, 누가 초대하든 마다하지 않는 것이 골프다. 하지만 그날의 초대자가 다시 날짜를 잡지 않는 한, 하수가 고수를 상대로 ‘복수를 하겠다’며 리턴 매치의 기회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초대한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또 볼 수 있는 사람인지, 또 봐야 할 사람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보기 쉽지 않은 관계이면 내기 방식을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 아니, 하수이건 고수이건 이미 집에서 나올 때 이날의 동반자 및 라운드 특성에 따라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너무 계산적이고 온기가 없는 조언인가. 그렇지만 나중에 코피 질질 흘리며 자존심까지 망가져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이기는 골프를 하려면 그날의 분위기를 지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골프는 한번 끌려가기 시작하면 한정 없다.

<브리즈번에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