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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출의 현장일기] 톱스타가 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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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방송의 꽃이라 불리는 PD(연출자). 프로그램의 최종 책임자이자 결정권자다. 감독 밑에 조감독 있듯이 AD(조연출)없이 PD도 없다. 그들의 현장 이야기를 연재한다.

방송사 PD 앞에서는 연예인들이 쩔쩔매리라고 믿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연예가 중계'의 조연출로서 연예인 때문에 얼마나 골치를 썩는지, 정말 아는 사람만 안다.

지난해 6월 미국에 있던 가수 Y씨가 약혼녀의 부친상 때문에 귀국했다. 들끓는 취재진들로 공항은 전쟁터였다. 입국장에서 Y가 나오기를 목빼고 기다렸다. 마침내 Y의 등장. 우락부락한 경호원들이 금세 둘러쌌다. 말 한마디 붙여 볼 틈이 없었다. 재빨리 빈소로 옮겨 2차 접촉 시도. 역시 '덩치' 들에게 밀렸다. 한참을 망연히 기다리는데, 방송사 한 곳만 들여보내겠단다. 아니 이 많은 취재진 속에서 딱 한 곳이라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하지만 여기는 전장(戰場). 앞뒤 가릴 때가 아니다. '나요, 나요' 고래고래 소리쳤더니 들어오란다. 복권 당첨이라도 된 듯 짜릿했다. 이후론 장지로, 부산의 Y 할머니 산소로…, Y가 체재하던 2박3일간 나는 Y의 그림자였다. 싫다는 사람 쫓아다니는 게 얼마나 피곤한 지. 스토커가 따로 없었다.

최근엔 이혼을 발표한 톱탤런트 출신 K양의 친정집 앞에서 밤을 지샜다. 가족을 만나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서다. 결국 허탕. 하지만 K양 아버지가 자주 간다는 골프 연습장을 확인하는 쾌거를 거뒀다. 그게 쾌거냐고? 그렇다. 우리들 세계에선.

나는 톱스타가 싫다. 팬과 취재진을 몰고 다니는 그들. 방송사 PD에게도 톱스타는 '하늘의 별'이다. 그만큼 만나기가 어렵다. 그들은 바야흐로 권력이다. 연예 권력. 그들과 벌인 수많은 해프닝은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정말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왜 그렇게 사냐고? 조금이라도 생생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연예가 중계'가 20년 넘게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라'는 광고 문구를 기억하는지. 조연출이야말로 방송 화면 속 숨어있는 1인치다. '연예가 중계' 의 가장자리 1인치만 더 걷어내보라. 나는 언제나, 거기에 서 있다.

송준영 ( KBS ‘연예가 중계’ 조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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