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사느냐, 죽느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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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41기 KT배 왕위전'

<도전기5국>
○ . 이창호 9단(왕위) ● . 윤준상 6단(도전자)

제7보(108~123)=흑▲가 대마의 심장에 못을 박으려 한다. 육안으로 볼 때 두 집은 없다. 이창호 9단은 차가운 물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108 때려내더니 조심스럽게 110으로 뛰어나간다. 저 유명한 이창호의 '타개'가 시작된 것이다. 이 9단은 20여 년간의 프로생활에서 대마를 잡으러 가본 적이 거의 없다. 그는 마음 속으로 '대마불사'라는 네 글자를 신봉한다. 그는 과거 자신의 새까만 세력 한가운데로 상대가 푹 뛰어들었을 때 장고 끝에 손을 뺀 적이 있다. 상대가 세 번을 더 두어 삶을 확정시킬 때까지 다른 곳을 두며 구경만 했다.

이 9단은 이처럼 '잡기'를 꺼리는 대신 '살기'는 즐겼다. '이창호의 대마는 죽지 않는다'는 것은 그래서 바둑계의 오랜 정설이었다. 하지만 근래 이창호의 대마도 몇 번인가 사망하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세월이 흐르며 이창호의 손속도 무뎌졌고 실수도 많아진 탓이다.

111로 시간을 연장하더니 113으로 꽉 잇는다. 114의 연결을 기다려 115의 예리한 파호. 윤준상 6단의 공격이 로마 창기병처럼 일사불란하다. 검토실에선 처음엔 대마불사라더니 점차 "만만치 않다"는 소리가 터져나온다(115로 '참고도' 흑 1로 차단하는 것은 백 2의 선수 한 집에 이어 백 8로 완생해 버린다).

116은 좋은 응수. 그러나 흑에도 121로 끼우고 123으로 단수하는 독수가 준비되어 있다. 백 A의 연결은 절대인데 흑이 빵때림하면 진짜 만만치 않은 것 아닌가. 이 9단은 다시 물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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