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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무소’ 익숙한데 ‘주민센터’ 변경 웬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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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행정자치부가 전국 2116개 ‘동사무소’ 명칭을 ‘동 주민센터’로 바꾸기로 하고 현판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행자부는 ‘주민 중심의 통합 서비스센터’라는 의미를 잘 나타낼 수 있는 명칭을 고르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고 국어학자들의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설문조사를 언제 어떻게 했고 조언한 학자들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명칭 변경은 매우 잘못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첫째, 동사무소는 주민 등록, 인감 등록, 각종 증명서 발급 등 주민의 민원을 돕는 중요한 행정 사무를 처리하는 곳이니 ‘사무소’로 쓰는 것이 알맞다.

둘째, 권위 있는 옥스퍼드 사전이나 웹스터 사전의 풀이에 따르면 ‘센터(center/centre)’는 기하학적인 중간 지점 또는 특수한 활동이 이뤄지거나 전문적이고 제한적인 시설이 있는 곳이다.

스포츠센터·쇼핑센터 등이 후자의 경우다. 그래서 ‘주민’이란 낱말에 ‘센터’라는 낱말이 바로 붙는 것은 문법적으로 틀리다. 센터라는 단어는 비교적 규모가 크고 전문성을 강조하는 시설을 말한다.

셋째,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산업자원부 광업등록사무소, 경기도 서울사무소 등과 같이 정부기관에서 ‘사무소’라는 명칭은 매우 자연스럽고 익숙하며 일관성 있는 표지다. 유독 행자부에서만 ‘센터’로 바꾸는 당위성을 인정할 수 없다.

넷째, 국민에게 익숙한 전통적 표현을 버리고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말 사랑에 솔선수범해야 할 정부기관이 할 일이 아니다.

 주민센터라는 명칭은 조잡하고 문법에도 맞지 않아 정착되기 어렵다고 본다. 출처 불명의 애매모호한 외래어 투성이로 된 상업적인 간판을 우리말로 바꾸도록 계도해야 할 행자부의 철학 빈곤을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릇된 시류를 좇는 인기영합주의 표본행정이 아닐까 한다. 행자부는 지금이라도 동사무소 명칭 바꾸기를 포기할 것을 권고한다.

 

최홍규 한국번역문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