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는 '돈으로' 김승연은 '땀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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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광동진(和光同塵)의 자세로 범행을 속죄하라."

법원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하며 던진 화두다.

11일 김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김득환 부장판사)는 "재벌그룹 회장으로서 과도한 특권의식을 버리고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 돼 보라"며 복지시설 및 단체 봉사활동, 대민지원 봉사활동으로서 2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했다.

앞서 재판을 받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김 회장은 형사사건으로 구속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두 회장은 항소심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은 것도 같다.

김 회장과 정 회장에 대한 사회봉사명령은 실형을 선고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고, 그렇다고 집행유예만 선고하기도 어딘가 부족한 사안에서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지만, 각각의 재판부가 밝힌 선고의 배경은 차이가 있다.

재판부가 김 회장에게 판결을 선고하면서 언급한 '화광동진'이란 말은 노자(老子)에 나오는 구절로, 자신이 가진 것이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속인과 어울린다는 말이다.

재판부는 김 회장이 자신의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들을 응징하기 위해 회사 조직과 폭력배 등을 동원하고, 나아가 재력을 동원해 사건 무마를 시도한 것이 과도한 특권 의식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몸을 낮춰 복지시설 등에서 '돈'이 아닌 '땀'으로 봉사활동을 하면, 범행을 속죄하고 이같은 특권 의식도 버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김 회장이 상고를 하지 않아 형이 확정될 경우 하루 8시간씩 꼬박 25일간을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김 회장은 병세가 완화대는 대로 관할 보호관찰소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29살에 재벌 회장에 올라 온갖 특권을 누리며 살아 온 김 회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처음으로 겪는 노동의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앞서 지난 6일 서울고법 형사10부(재판장 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정 회장은 8400억원의 사회공헌 약속 이행을 사회봉사명령으로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돈이 많은 사람은 돈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고 선고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재판부가 사회봉사명령을 개인의 '속죄'보다는 '기여'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봤다는 점에서, 김 회장에게 내려진 사회봉사명령과는 차이가 있다.

일부 계층의 범죄를 눈감아주는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되겠지만 '교화'라는 형벌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 그에 걸맞는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하는 것이 효율적인 처벌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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