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따라 자살하고 싶은 충동 '베르테르 효과' 실제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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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이 자살하면 따라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베르테르 효과'가 실제 존재할까? 청소년위원회 산하 한국청소년상담원(원장 이배근)은 베르테르 효과가 현실에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설문 조사 결과를 9일 공개했다.

청소년상담원은 4~5월 전국 초.중.고생 4575명을 대상으로 자살에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청소년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6.5%(3043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들의 경우 72.2%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실제로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후 23일간 종로구를 포함한 서울시내 7개 구에서 하루 평균 2.13명이 자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 자살 이전의 0.84명에 비해 2.5배 늘어난 수치다.

올 2월 탤런트 정다빈씨가 자살한 뒤에도 청소년상담원과 전국청소년상담센터에 접수된 자살 관련 상담은 700건이 넘었다. 지난해 한 해 상담건수(360건)의 두 배에 가까운 상담 요청이 몰려든 것이다.

청소년상담원 지승희 실장은 "유명인, 특히 인기 연예인의 자살 소식에 감수성 예민한 10대들이 모방 자살 충동을 일으키기 쉽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우리 청소년 중 절반 이상(58.5%)이 자살 충동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열 명 중 한 명(11.1%)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가족과의 갈등을 경험한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자살에 대한 고민을 하는 비율이 3.7배가량 높았다.

천인성 기자

◆베르테르 효과=18세기 독일의 문호 괴테가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했다.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연인과 헤어진 뒤 노란 조끼를 입고 권총으로 자살한다. 책이 출간된 뒤 당시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 비슷한 유형의 자살이 급증했다.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가 유명인의 자살 소식 뒤 자살자 수가 평소보다 많은 것을 지적하며 사용한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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