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황세희의몸&마음] 고통 겪는 사람 위로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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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 알지? S그룹에 취직했다더라.”
 이는 구직자들에게 던지는 가장 잔인한 말 중 하나다. 내 처지가 나쁠 때 남의 경사는 상대적 박탈감만 초래한다. 물론 함께 기뻐해줄 여력은 거의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나만 불행하다’고 느낄 때다. 핀란드 헬싱키대 마르티카이넨 교수팀이 250만 명의 핀란드 남녀(25∼50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실직자들의 사망률이 사회 전체의 실업률이 낮을 때보다 높을 때 오히려 감소했던 것이다. 실업률이 증가해 주변에 실직자가 많아지면 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 자체가 줄어 사망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눈높이를 낮추는 식의 탈출구가 있는 취업만 해도 내 문제가 개입되면 친구와의 동고동락도 쉽지 않다.

 하물며 파산이나 처절한 배신, 불치병,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 치명적인 상황에 처한 당사자의 심정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 처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5단계의 애도반응을 보인다.
 처음엔 “내게 이런 불행한 일이 닥칠 리 없다”는 강한 ‘부정’을 하다가 연이어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분노’를 표출한다. 하지만 이 역시 해결책이 아니다 보니 종교와 윤리를 동원해 “이번 일만 잘 되면 앞으로는 열심히 착하게 살겠다”는 식의 ‘타협’을 모색한다. 물론 타협점은 찾기 힘들고, 현실만 차츰 명확하게 인식되면서 “세상만사 귀찮고 미련도 없다”는 ‘우울’ 상태에 빠진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엔 고통스럽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느끼고, 그 결과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수용’의 단계에 이른다.

 물론 이 과정은 좌절과 고통의 연속이며,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어떤 종류건 상처는 자극할수록 덧나기 마련이며, 아픔도 심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또 아물 때까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빠른 치유를 한답시고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상처가 덧나는 것은 물론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이것이 고통에 빠진 사람에게 불필요한 관심이나 섣부른 위로를 자제해야 하는 이유다.

 아프가니스탄에 남았던 인질 전원 석방 소식이 전해진 날 피랍 가족모임에선 살해당한 고(故) 심성민씨 부모를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했고, 부모는 “제발 나를 살려 달라” 며 방문을 거절했다고 한다. 천금 같은 아들을 어느 날 갑자기 잃은 부모의 당연한 반응이다.

 지인 중 불의의 사고로 자랑스러운 아들을 일찍 보낸 어머니가 있다. 남들 앞에서 눈물 한번 안 보일 정도로 교양 있고 자존심 강한 그녀가 어느 날 내게 아들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준 적이 있다.

 “아들이 죽은 뒤 위로하는 말들이 너무 듣기 싫어 한동안 대인기피증에 걸렸어요. 진정으로 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아들 화제조차 꺼내지 않더라고요. 지금은 몇 년이 지나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가 됐지만, 아직도 내 입으로 꺼내기 전에 그 아이 화제가 나오는 건 여전히 거북해요.”

 고통에 빠진 주변 사람의 괴로움을 진심으로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면 섣부른 위로나 조언 대신, 당사자의 한과 분노, 좌절과 절망을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또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황세희 의학전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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