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함께 보는 판결] 절세와 탈세 사이, 납세자의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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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천 등 대도시에서 법인을 설립한 뒤 5년 안에 부동산을 취득해 등기하면 등록세를 3배 중과(重課)한다. 대도시로의 인구 유입이나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등록세 중과 규정은 기대한 정책적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세수(稅收) 증대에만 기여한다는 이유로 위헌 논란이 있었으나 헌법재판소는 합헌으로 판시한 바 있다(헌법재판소 1998. 3. 27. 선고 97헌바79 결정).

기업들은 등록세 중과를 피하기 위한 묘안으로, 설립된 지 5년이 지난 휴면(休眠)법인을 인수해 상호·목적사업 등을 변경해 그 법인 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한다. 행정예규도 법인이 설립등기를 마친 후 폐업상태에 있었다 하더라도 최초에 설립등기를 한 날을 기준으로 등록세 중과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최근 외국계 펀드가 위와 같이 휴면법인을 인수하는 방법으로 서울 강남의 빌딩을 취득하면서 수백억원의 등록세를 피해 나가자, 지방자치단체가 태도를 바꿨다.

새로 변경등기가 된 날을 기준으로 설립 후 5년 이내에 부동산을 취득한 것으로 보고 등록세 중과 처분을 했다. 당초의 휴면법인과 인수 후 변경된 법인은 그 실질이 바뀌어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엇갈린 판결을 내놓았다. 우선 등록세 중과가 부당하므로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립등기를 마친 뒤 폐업상태의 휴면법인을 인수해 그 법인의 상호·임원·자본·목적사업 등을 변경한 경우라도 변경등기를 새로운 법인의 설립으로 볼 수 없으므로 당초 설립등기를 한 날을 기준으로 등록세 중과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서울행정법원 2007. 4. 6. 선고 2006구합30683 판결).

반면 등록세 중과가 정당하다고 한 판결이다. 당초의 휴면법인과 새로 변경등기가 된 법인은 그 상호와 본점 소재지, 목적사업 등이 다르고 임원·주주 등의 인적·물적 구성이 모두 달라져 서로 동일성이 없는 별개의 회사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변경등기가 된 날에 새로 설립한 것으로 보고 그때를 기준으로 등록세 중과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서울행정법원 2007. 4. 26. 선고 2006구합37271 판결).

전자의 판결은 과세요건 법정주의 또는 과세요건 명확주의로 표현되는 조세 법률주의의 원칙이 강조된 것이고, 후자는 실질과세의 원칙이 중시된 판결이다.

조세사건을 다루다 보면 세법 해석에 관한 기본원리가 충돌하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과세요건이나 감면요건을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해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를 원한다. 이에 맞서 과세 관청은 복잡다기한 경제상황을 예상하고 일일이 법률에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포괄적인 규정만 정해놓고 ‘조세공평’을 내세워 탈세행위를 규제하려고 한다.

위의 두 판결도 세법 해석의 기본원리를 둘러싼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한 푼이라도 세금을 덜 내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어찌 됐든 예전의 행정예규를 기준으로 할 때 합법적인 절세방법이 하루아침에 탈세행위가 되어 가산세 부담까지 져야 한다면 납세자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강석훈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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